고창 신재효 고택
고창 신재효 고택 Sin Jae-hyo’s House, Go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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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창 신재효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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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in Jae-hyo’s House, Gochang |
한자 | 高敞 申在孝 古宅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39호 |
지정(등록)일 | 1979년 1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7필지/1,097㎡ |
웹사이트 | 고창 신재효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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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 집은 신재효의 대저택인 동리정사의 사랑채로 조선 철종 때인 1850년에 처음 지었고 1899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본래 동리정사는 13,000여㎡ 대지에 안채와 14칸 줄행랑채 등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마당으로 수로가 흘렀고 거대한 석가산이 있어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신재효(1812~1884)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 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 타령)>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였다. 이전까지 일정한 체계나 순서 없이 불러오던 광대 소리를 모아 사설의 체계를 잡아 개작하고 통일한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로서 판소리 사설(타령)을 창작하고 집대성한 인물이다. 신재효는 향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천대 받던 판소리꾼을 교육하고 예술 활동을 후원하였다. 판소리를 국문학의 정수로 끌어올렸다.
이 집은 특이하게 원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다. 건축 당시에는 모두 원기둥이었는데, 암행어사가 신분에 맞게 법을 지키기를 요청하자 어사의 체면을 살려주고자 집을 낮추고 뒷기둥을 격이 낮은 사각기둥으로 고쳤다고 한다.
영문
Sin Jae-hyo’s House, Gochang
This building is the men’s quarters of Dongnijeongsa House, the residence of Sin Jae-hyo (1812-1884), a writer and critic of the musical storytelling genre, pansori. The original building was constructed in 1850, and is said to have been renovated in 1899 by Sin Jae-hyo’s son. From the mid-20th century, it was used as the official residence of the Gochang Police Chief.
Originally, Dongnijeongsa House consisted of various buildings, including women’s quarters, servants’ quarters, and numerous auxiliary buildings located on around 13,000 sq. m of land. Today, only the men’s quarters remains, together with a recently reconstructed pond, a wall, and a gate.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with a front narrow wooden veranda on either side. To the left is an adjacent kitchen.
Born in Gochang, Sin Jae-hyo was a local official in charge of administrative work at the local government office. It is presumed that he became particularly interested in pansori when he took on the duty of selecting the performers for banquets at the government office. He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by recording and compiling the stories, as well as organizing the theory of pansori, which until that point had been passed down orally without any set structure or order. He also educated and supported the artistic activities of pansori performers, who in those times were disregarded and marginalized.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판소리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신재효(1812-1884)의 대저택인 동리정사에 속해 있던 사랑채이다. 1850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신재효의 아들이 1899년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고창경찰서 관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본래 동리정사는 13,000 여㎡ 대지에 안채와 행랑채 등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랑채와 함께 근래에 다시 만든 연못과 담장, 문 등이 있다. 사랑채 건물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있고, 방 앞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왼편에는 부엌이 딸려 있다.
고창에서 태어난 신재효는 지방 관아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향리였다. 관청에서 열리는 연회 때 판소리꾼들을 섭외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판소리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체계나 순서 없이 구전되어 오던 판소리를 문자로 기록하여 집대성하였으며, 판소리의 이론을 정리하였다. 또한 당시 천대 받던 판소리꾼을 교육하고 그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등 판소리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참고자료
- 고창 신재효 고택 - 한국의 전통가옥 기록화 보고서, 문화재청, 2005. -> 상세 정보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