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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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Seoamsa Temple Site on Bukhansan Mountain, Goyang
대표명칭 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영문명칭 Seoamsa Temple Site on Bukhansan Mountain, Goyang
한자 高揚 北漢山 西巖寺址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145-35 (북한동)
지정(등록) 종목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07년 8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5,973㎡
웹사이트 고양 북한산 서암사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서암사는 조선 숙종 37년(1711)에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 방어와 관리를 위해 건립된 13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승려 광헌(廣軒)이 133칸 규모로 처음 세웠다. 그리고 고려 문익공 민지(閔漬)가 살았던 옛터가 그 옆에 있어 민지사(閔漬寺)로 불리기도 했으나 이후 사찰의 이름을 서암사로 변경하였다.

서암사의 승려들은 수문(水文) 일대의 방어를 주로 담당했으며, 사찰에는 군기고(軍器庫)와 승장(僧將)* 1명, 수승(首僧)* 1명, 번승(番僧)* 3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승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약 200여 년간 그 역할이 지속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남아 있었던 서암사는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로 매몰되어 절이 없어졌다.

서암사지에는 두 차례 발굴 조사 결과 대웅전과 산신각, 세심루, 군기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조선시대 수파문(水波文) 기와편*과 청화백자편, 명문(銘文) 기와편, 백자편 등이 출토되었다.


  • 승장 : 승군의 지휘관
  • 수승 : 사찰에서 중요한 소임이나 책임을 맡은 승려
  • 번승 : 국가의 토목 공사 및 산성 방비 등에 번갈아가며 동원된 승려
  • 수파문기와 : 파도문양이 새겨진 기와
  • 명문기와 : 글자가 새겨진 기와

영문

Seoamsa Temple Site on Bukhansan Mountain, Goyang

Seoamsa Temple was one of 13 Buddhist temples built after the construction of Bukhansanseong Fortress in 1711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o help defend and manage the fortress area.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it was founded by the monk Gwangheon. Because it was located near the former residence of Min Ji (1248-1326),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temple was initially called Minjisa, but the name was later changed to Seoamsa.

The temple housed an armory and was manned by military monks who were responsible for guarding the floodgate area of the fortress. The temple’s garrison included one commanding monk, one chief monk, and three rotating monks. This defensive role continued until the system of military monks was abolished in 1894. Afterward, Seoamsa remained as an ordinary Buddhist temple until it was destroyed by a major flood in 1925.

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the site have confirmed the remains of a main worship hall, a mountain spirit shrine, a pavilion, and an armory. Artifacts discovered at the site include fragments of roof tiles with wave patterns or inscribed characters, as well as fragments of white porcelain, some with underglaze cobalt blue designs.

영문 해설 내용

서암사는 조선시대인 1711년 북한산성이 축성된 이후 산성의 방어와 관리를 위해 건립된 13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기록에 따르면 승려 광헌이 처음 세웠으며, 고려시대 문신 민지(1248-1326)가 살던 옛집이 인근에 있어 처음에는 민지사로 불리기도 했다.

서암사에는 군기고가 있었고, 승려들은 산성의 수문 일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승장(僧將) 1명, 수승(首僧) 1명, 번승(番僧) 3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역할은 1894년 승군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서암사는 일반 사찰로 남아 있다가 1925년 대홍수로 소실되었다.

서암사지에서는 두 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대웅전, 산신각, 세심루, 군기고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파도 문양이 새겨진 기와 조각, 청화백자 조각,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 조각, 백자 조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