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호암사
호암사 Hoamsa Shrine, Gos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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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호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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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oamsa Shrine, Goseong |
한자 | 虎巖祠 |
주소 |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324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39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8월 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5동 |
웹사이트 | "고성 호암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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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고성 호암사는 중국 명나라에서 귀화한 사암 천만리(思庵 千萬里)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천만리 장군은 서쪽 중북산 천고봉 밑에서 살아서 성을 천씨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아들 상과 함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왔다.
평양전투를 비롯하여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울산에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머물러 살자, 선조는 그의 공을 생각하여 화산군에 봉하고 논밭 30결을 내려 주었으며 그의 아들인 상은 한성부 좌윤에 봉하였다.
이 사당은 경사가 급한 비탈면에 동쪽을 향해 있다. 낮은 곳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을 배치하고 높은 곳에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강당과 사당이 동서축 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중앙에 마루 2칸이 있고 그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나무인 도리는 3개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도리, 장여 등의 밑에 받치는 됫박 모양의 네모진 나무인 소로를 받쳐서 장식한 소로수장 형식으로 되어 있다.강당의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며 전면에 툇간을 두고 뒷면에 통칸 마루방을 설치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지붕은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 한성부 좌윤: 한성부(한성 권역) 내의 종2품 관직을 말한다.
- 장여: 도리 밑을 받치는 모진 기둥을 말한다.
영문
Hoamsa Shrine is dedicated to Cheon Man-ri (千萬里, 1543-?), a Chinese general who became a naturalized subject of Joseon.
Born in Ming China, Che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1 and made distinguished achievements in defeating Mongol troops in the north in 1575.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King Seonjo (r. 1567-1608) of Joseon requested the Ming emperor's military support. Cheon came to Joseon as one of the Ming generals led by Li Rusong (1549-1598), the commander-in-chief of the Ming army, and successfully fought many battles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After the war, he did not return to China and stayed in Korea instead.
The entire shrine consists of a lecture hall area in the front and a shrine area in the back, separated by a wall with an inner gate. The lecture hall has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with a narrow wooden veranda on either side.
영문 해설 내용
호암사는 조선시대의 무신인 천만리 장군(1543-?)을 모시는 사당이다.
천만리 장군은 본래 명나라 출신으로, 1571년 무과에 급제하고 1575년에는 북방의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재위 1567-1608)가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을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1549-1598)을 따라 조선에 왔으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머물러 살았다.
이 사당은 앞쪽에는 교육을 위한 강당 영역이 있고, 사당 영역과는 내삼문이 달린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강당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