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갈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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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천서원
Gal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Goseong
고성군청, "어머니 품속같은 마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고성군 공식 블로그.
대표명칭 갈천서원
영문명칭 Gal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Goseong
한자 葛川書院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1146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36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고성 갈천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성 갈천서원은 행촌 이암(杏村 李嵒)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이암(1297~1364)은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했다.

처음에는 회화면에 금봉서원이라 이름 지어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1712년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우면서 갈천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유림들이 복원하였다. 지금은 행촌 이암과 함께 묵재 노필(墨齋 盧㻫), 관포 어득강(灌圃 魚得江), 도촌 이교(桃村 李嶠)를 모시고 있다.

서원은 갈천천과 대가천이 만나는 지점의 구릉 서쪽 비탈면에 서쪽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낮은 곳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을 배치하고 높은 곳에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정문인 불사문을 지나면 강당이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며 중앙에 마루 1칸을 두고 마루 양쪽에 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오른쪽 방 앞에는 원두막 형식의 마루인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어 원내의 행사나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강당 뒤로는 사당으로 가는 출입문인 내삼문이 있으며 내삼문을 지나면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사당은 도리나 장여 밑에 소로 를 받쳐서 장식한 소로수장 구조로 되어 있으며, 도리는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짓는 맞배지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 문하시중(門下侍中): 고려 시대에 국무를 총괄하던 관아인 첨의부(僉議府)의 종1품 최고 관직이다. 좌·우정승(左右政丞)이라 하던 것을 문하시중과 수문하시중으로 고쳤으며 공민왕 11년(1362)에는 다시 좌·우정승으로 고쳤다.
  • 도리: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구조물이다.
  • 장여: 도리밑을 받치는 모진 기둥이다.
  • 소로: 장여나 살미·첨차·쇠서·익공 등 공포재의 밑에 받치는 됫박 모양의 네모진 나무를 말한다.

영문

Confucian academies, called seowon in Korean, are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ich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Galcheonseowon is dedicated to Yi Am (1297-1364),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13 at the age of 17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escorted King Gongmin (r. 1351-1374) when the king briefly retreated from the Goryeo capital to the Andong area during the Red Turban invasions (1359-1362) and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He was also a renowned calligrapher and painter.

This Confucian academy was first established in the late 14th century under the name Geumbongseowon. After being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was rebuilt in 1712 at the current location and was renamed Galcheonseowon. It was once dem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t was reconstructed after 1945.

Currently, Galcheonseowon also honors Yi Gyo (?-1361),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and a younger brother of Yi Am, and two civil official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namely No Pil (1464-1532) and Eo Deuk-gang (1470-1550).

The complex includes a main gate, lecture hall, inner gate, and shrine. Its layout, placing the lecture hall area in the front and the shrine area in the back, is typical of Confucian academies. The lecture hall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either side. The room on the right features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The shrine is called “Sahyeonsa (四賢祠),” meaning “a shrine for four worthies."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갈천서원은 고려시대의 문신인 이암(1297-1364)을 모신 서원이다. 이암은 1313년 1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서화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이 서원은 14세기 후반 금봉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712년 지금 위치에 다시 세우면서 갈천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다시 세웠다.

지금은 이암의 동생이자 고려시대의 문신인 이교(?-1361)와 조선시대의 문신인 노필(1464-1532), 어득강(1470-1550)을 함께 모시고 있다.

갈천서원은 정문, 강당,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을 앞에 두고 사당을 뒤에 두는 것은 서원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치이다.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마루 양쪽에 방이 하나씩 있으며, 오른쪽 방 앞에는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사당의 이름은 ‘사현사(四賢祠)’로 ‘4명의 현인을 모신 사당’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