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건물터(익산 미륵사지)
고려시대 건물터 高麗時代 建物址 Building Sites (Goryeo Peri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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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익산 미륵사지 |
해설문
국문
고려시대 건물터는 미륵사지 전 구역에서 발굴되었다. 대부분 크지 않은 규모로 고려시대 내내 많은 건물들이 공존했던 것은 아니고 시기에 따라 건물이 건립되고 위치가 변화되었다. 그 중 서원 금당지와 주변 지역은 막새기와와 명문기와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려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여러 차례 고쳐 지으면서 금당 등의 중심 기능을 이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건물터는 온돌 시설을 한 것이 많다. 고려 초기에는 실내에 아궁이를 두었으나 그 이후에는 아궁이를 실외에 설치하여 아궁이 위치의 변천 과정을 보연준다. 출토 유물에는 청동제 불두, 청동제 의식 용기, 토기, 청자, 건물의 증축과 보수 시기 등을 알 수 있는 연호(年號)가 있는 명문기와(銘文瓦), 미륵사 명칭이 있는 명문기와 등이 있다.
영문
Building Sites (Goryeo Period)
The sites of buildings constructed in the Goryeo period (918-1392) were identified across the temple complex. These many buildings were relatively small in scale and did not exist concurrently. Rather, they reflect a process of construction and renovation at different points throughout the Goryeo period.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building sites help to inform the timeline of expansions and reconstructions of the temple. These include a bronze Buddha’s head, bronze ritual containers, earthenware, celadon, roof tiles bearing the name “Mireuksa,” and roof tiles with the years of production engraved on them. For instance, convex roof-end tiles and roof tiles with inscriptions found in the vicinity of the west worship hall suggest that the worship hall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temple throughout the Goryeo period.
Many of the sites were found to have had underfloor heating systems. The sites dating to the early Goryeo period had indoor fireboxes, while those dating to the later Goryeo period had outdoor fireboxes, thus showing the change in technology over time.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 건물터는 미륵사지 전 구역에서 발굴되었다. 대부분 크지 않은 규모로 고려시대 내내 많은 건물들이 공존했던 것은 아니고 시기에 따라 건물이 건립되고 위치가 변화되었다.
건물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사찰의 중창과 중수 시기 등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에는 청동제 불두, 청동제 의식 용기, 토기, 청자, 미륵사 명칭이 있는 명문기와, 연호(年號)가 있는 명문기와(銘文瓦)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서원 금당지와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막새기와와 명문기와를 통해 금당이 고려시대 초기부터 말기까지 중심 기능을 이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건물터는 온돌 시설을 한 것이 많다. 고려 초기에는 실내에 아궁이를 두었으나 그 이후에는 아궁이를 실외에 설치하여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