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진립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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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진립 정려비
Stele of Choe Jin-rip, Gyeongju
경주 잠와 최진립 정려비, 불교중앙박물관.
대표명칭 경주 최진립 정려비
영문명칭 Stele of Choe Jin-rip, Gyeongju
한자 慶州 崔震立 旌閭碑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226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67호
지정일 2021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최진립 정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가암마을 북쪽에 세워진 조선 중기의 무신 잠와 최진립(潛窩 崔震立, 1568~1636)의 정려비이다. 인조가 정려하여 황호의 찬, 김광욱의 서, 신익전의 전으로 비문이 작성되었지만 비는 1707년에 건립되었다.

비는 비머리, 비몸, 하대석까지 모두 화강석으로 전체 높이는 230cm이다. 이수형 비머리에 연화문의 하대석을 한 형식은 경주 소재 비석 중에서 희귀한 예이다. 1313자의 비문은 마모되어 판독되지 않은 글자가 다수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현판에는 「정무공최선생지려(貞武公催先生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작은 아버지 최봉천(崔奉天), 동생 최계종(崔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여 용인 험천(險川)에서 전사하였다.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청백리(淸白吏)*로 기록되었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정무공실기(貞武公實記)》 2권이 있다.

가암마을은 최진립 장군이 기거하던 곳이라 한다. 이 정려비와 함께 충의당(忠義堂), 용산서원(龍山書院), 신도비, 장군이 심었다는 회나무 등이 있어 숭렬(崇烈)의 의미를 지닌 전통마을이다.


  • 청백리(淸白吏):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 근검, 도덕, 효행, 인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인 관료상.
  • 최진립은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전사했으므로 몰년은 서력으로 1637년임.

영문

Stele of Choe Jin-rip, Gyeongju

This stele was erected in 1707 to commemorate the patriotic loyalty of Choe Jin-rip (1568-1637),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Choe Jin-rip led a civilian army and fought the enemy alongside his uncle Choe Bong-cheon (1564-1597) and younger brother Choe Gye-jong (1570-1647). During Manchu invasion of 1637, he died in the Battle of Heomcheon (in present-day Yongin). In 1637, he was posthumously appointed to office of Minister of War, and, in 1647, he was given the posthumous title of Pure and Untarnished Official.

The granite stele, measuring 2.3 m in height,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The pedestal is engraved with lotus designs, which is rare among steles of the Gyeongju area. The inscription consists of 1,313 characters and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Hwang Ho (1604-1656) and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 Kim Gwang-uk (1580-1656). Parts of the inscription are illegible due to erosion. The stele’s title was calligraphed by the civil official Sin Ik-jeon (1605-1660).

Gaam Village, where the stele is located, is where Choe Jin-rip lived before his death. Also located in the village is Chunguidang Hall where Choe Jin-rip lived, Yongsanseowon Confucian Academy where Choe Jin-rip is honored, a stele commemorating Choe Jin-rip’s life and achievements, and a Siberian spindletree said to have been planted by Choe Jin-rip.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최진립(1568-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07년에 건립된 정려비이다.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작은 아버지 최봉천(1564-1597), 동생 최계종(1570-1647)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다.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여 험천(지금의 용인 지역)에서 전사하였다. 1637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1647년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정려비는 모두 화강석으로 만든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2.3m이다. 받침돌에 연꽃잎 문양을 새긴 형식은 경주 지역에 남아 있는 비석 중에서 희귀한 예이다. 비문은 총 1,313자로, 문신 황호(1604-1656)가 짓고 문신 김광욱(1580-1656)이 글씨를 썼다. 비문 중에는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다수 있다. 정려비의 제목은 문신 신익전(1605-1660)이 글씨를 썼다.

정려비가 세워진 가암마을은 최진립이 생전에 살던 곳이다. 이 마을에는 최진립이 살던 충의당, 최진립을 기리는 용산서원, 최진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 최진립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회나무 등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