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 Songcheom Head House in Yangdong,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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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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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ongcheom Head House in Yangdong, Gyeongju |
한자 | 慶州 良洞마을 松簷宗宅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75-10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3호 |
지정(등록)일 | 1970년 12월 2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필지/4,575㎡ |
웹사이트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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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경주손씨 큰 종가로 이 마을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 1433~1484)가 조선 세조 5년(1459)에 지은 집이다. 사랑채에 걸린 현판인 ‘서백당’의 의미는 ‘참을 인(忍) 자를 백 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다.
사랑채의 뒤쪽 높은 곳에 사당이 있으며, 마당의 향나무는 500여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관(地官)이 ‘이 집터에서 세 명의 현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실제로 손소의 아들 손중돈과 외손자인 이언적이 여기에서 태어났다.
종가다운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사랑채 뒤편 정원의 경치 역시 뛰어난데, 건물을 지은 수법과 배치 방법들이 독특하여 조선 전기의 옛 살림집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영문
Songcheom Head House, built in the 15th century, is the oldest house in Yangdong Village. The house was built by Son So (1433-1484), who was the first person from the Gyeongju Son Clan to settle in Yangdong Village. It is currently used as the head house of the Gyeongju Son Clan.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Located on the highest hill in the village, the location of this house has been considered so auspicious that it could be the birthplace of three great men. In fact, two great men were born at this house: Son Jung-don, the second son of Son So, was a high civil official who was praised as “pure and untarnished,” and Yi Eon-jeok, one of Son So's grandsons, was among the most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house consists of a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gate quarters, storehouse, and a shrine. The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are connected, forming a square layout, and the shrine stands on the high ground behind the women’s quarters. In the men’s quarters, there are two plaques, bearing the Chinese characters of “Songcheom (松簷)” and “Seobaekdang (書百堂).” Songcheom is the name of this house, literally meaning "a house of pine trees," and Seobaekdang, meaning “a hall for writing 'patience' one hundred times,” stands for the family’s spirit of trying to maintain a healthy and upright mind.
영문 해설 내용
송첨 종택은 15세기[2][3]에 지어진 것으로,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이다. 양동마을에 처음 들어온 경주손씨인 손소(1433-1484)가 지은 집으로 현재까지 경주손씨의 종가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양동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이 집은 세 명의 위인이 탄생할만한 명당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이곳에서 손소의 둘째 아들인 손중돈과 외손인 이언적이 태어났는데, 손중돈은 고위 관직을 역임하고 청백리라 불린 문신이었고 이언적은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 중 한명이었다.
송첨 종택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후원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이 있다. 사랑채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송첨’은 이 집의 이름이고, ‘서백당’은 ‘참을 인자를 백번 쓴다’는 뜻으로 마음을 바로세우고자 하는 이 집의 정신을 나타낸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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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 출처: 목심회, 『우리 옛 집 - 경상도』, 도서출판 집, 2015, 397쪽.
- ↑ 건립연대가 자료마다 다름.
- 1454년 – 두산백과, 경주양동마을 홈페이지
- 1457년 – 목심회, 『우리 옛 집 - 경상도』, 도서출판 집, 2015.
- 1459년 – 국문 해설문(손소가 과거에 급제한 해이기도 함)
- 1484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손소가 사망한 해)
- ↑ "손소는 청송부(靑松府)의 속현인 안덕현(安德縣)에서 태어나, 25세인 1457년(세조 3)에 풍덕류씨(豊德柳氏)류복하(柳復河)의 사위로 양동에 정착하였다. 이 때 송첨을 지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양동으로 들어온 뒤 처음에는 처가에서 살다가 4년 뒤에 송첨을 짓고 분가하였다고도 전한다. 한편 1484년(성종 15)에 건립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 출처: 김도경,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