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굴암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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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 석굴
Seokguram Grotto, Gyeongju
경주 석굴암 석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석굴암 석굴
영문명칭 Seokguram Grotto, Gyeongju
한자 慶州 石窟庵 石窟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873-243, 석굴암 (진현동)
지정(등록) 종목 국보 제24호
지정(등록)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석굴암 석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석굴암 석굴은 신라의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조각이다. 경덕왕 10년(751)에 만들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 완성한 석굴사원이다.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 불렀다. 신라 경덕왕 때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 700?~774)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 사원이 자연 암벽을 파고 들어가 만든 것과 달리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인공석굴이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단단해서 정으로 쪼아 석굴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돌을 쌓아 석굴을 만든 것이다.

앞쪽의 입구가 되는 전실(前室)과 본존 불상을 모신 주실(主室), 이를 연결하는 통로로 구성되었다. 전실 바닥은 사각형이고, 주실은 원형이며 천정은 돔(dome) 모양이다. 전체 벽면에는 모두 40개의 조각상이 위계(位階)*에 맞게 배치되어 있는데, 감실(龕室)*에 봉안했던 2구가 없어 현재 38구가 남아있다. 네모난 전실에는 팔부신장상을, 통로에는 입구에 금강역사상과 사천왕상을 새겼다. 주실에는 원형으로 돌아가는 벽면에 천부상, 보살상, 십대제자상이 양쪽에 대칭되게 배치되었고, 제일 안쪽에는 십일면관음상이 있다. 주실의 벽과 천정 사이에 10개의 감실이 있고 감실마다 다양한 형상의 보살상을 안치했는데, 지금은 8구만 남아 있다. 둥근 주실의 중심에서 약간 뒤쪽으로 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 앉은 대좌를 합치면 높이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불상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두광(頭光)은 별도로 만들어 뒷벽에 배치하였다. 불상을 바라볼 때 두광 안에 불상의 머리가 정확히 맞춰지는 지점이 불상을 바라보는 적절한 장소가 된다.

석굴암의 독창적이고 정밀한 설계와 조각상에 나타나는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 위계(位階) : 벼슬의 품계나 지위, 계층의 등급
  • 감실(龕室) : 불교·유교·가톨릭 등 종교에서 신위(神位) 및 작은 불상·초상, 또는 성체(聖體) 등을 모셔둔 곳

영문

Seokguram Grotto, Gyeongju

This Buddhist grotto and its affiliated hermitage were established along with the nearby Bulguksa Temple in the mid-8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e name Seokguram means “hermitage of the stone grotto,” but it was also formerly known as Seokbulsa, meaning “temple of the stone buddha.”

According to legend in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the hermitage and its grotto was constructed between 751 and 774 by Kim Dae-seong (700-774), a high-ranking official of the Silla kingdom. It is said he founded this hermitage to honor the parents of his past life and founded Bulguksa Temple to honor the parents of his current life.

The grotto faces southeast on the mountain slope, with the East Sea visible in the distance. The grotto was artificially made by stacking hewn stones without mortar to create its main rotunda chamber and arched entrance chamber. In the center of the main chamber is a statue of a buddha seated on a lotus pedestal. This main buddha, measuring around 5 m in height with its pedestal, sits in the “earth-witness” posture, which symbolizes the Buddha’s enlightenment underneath the Bodhi tree. Behind the main buddha on the wall of the grotto is the buddha’s halo. On the walls of the main chamber are relief carvings of Buddhist figures, above which are niches with statues. These carvings depict, from the center rear and moving outwards toward the front,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Compassion; center), the Buddha’s 10 principal disciples (five on each side), the bodhisattvas Samantabhadra (Bodhisattva of Great Conduct; left) and Manjusri (Bodhisattva of Wisdom and Insight; right), and the Hindu gods Brahma (left) and Indra (right). On the flat walls in front of the rotunda are carvings of the Four Guardian Kings, while the entrance chamber features carvings of wrathful guardians who protec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As Seokguram Grotto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renowned Buddhist masterpieces of the Silla kingdom, it was register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in 1995 together with Bulguksa Temple.

일제시대 보수 관련 내용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authorities attempted to repair the grotto, which was partially collapsed. They dismantled the grotto, but reassembled it with some of the carvings in the wrong spots. Some of the stone sculptures went missing at this time. They failed to properly restore the traditional water drainage system, resulting in leakage, so they covered the grotto with over 1 m of cement, and then later with waterproof asphalt. This resulted in an accumulation of humidity and an inability to regulate the temperature within the grotto, leading to the build-up of moss and mold which began eroding the artwork. From 1962 to 1964, efforts were made to undo these negative effects by installing various systems to control temperature and humidity. The wooden structure in front of the grotto was added at this time. The grotto itself was later enclosed with glass to regulate the environment inside, and the grotto can no longer be entered by the public except on special occasions.

Despite the partial damage, the artwork inside fortunately remains in good condition. As it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renowned Buddhist masterpieces of the Silla kingdom, Seokguram Grotto was register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in 1995 together with Bulguksa Temple.

영문 해설 내용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반에 만들어졌다. 신라 왕경이 있던 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12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석굴암이라는 이름은 ‘석굴 암자’라는 뜻이지만, 원래는 ‘석불이 있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석불사라 불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석굴암은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700-774)이 751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774년에 완성하였다.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석굴은 해발 750m 높이에서 남동쪽을 향해 있으며, 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잘 다듬은 석재를 쌓아 돔형의 주실과 아치형의 전실을 만들었다. 주실 중앙에는 연화대좌에 앉은 여래상이 있다. 대좌를 합해 높이가 약 5m에 이르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데, 이는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여래상 뒷벽에는 두광을 배치하였다. 주실의 벽면에는 여러 부조상을 배치하였고, 각 부조상 위에는 보살상을 안치한 감실이 있다. 이 부조상들은, 중앙 뒤편에서부터 원형으로 돌아나가는 순서로, 관음보살, 10대제자, 보현보살, 문수보살, 범천, 제석천이다. 통로 입구에는 사천왕상을 새겼고, 전실에는 팔부신장상을 새겼다.

신라시대 불교조각의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제시대 보수 관련 내용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이 석굴을 중수하려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부분적인 파손을 야기했다. 먼저 석굴을 완전히 해체하였다가 재조립하였는데, 일부 불상들을 잘못된 위치에 배치하였고, 이때 사라진 상들도 있었다. 또한 원래의 배수 시스템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여 누수가 발생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멘트와 방수 아스팔트 등으로 덮었다. 이로 인해 석굴 안에 습기가 차고 온도를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끼와 곰팡이가 생겨 상들을 손상시키기 시작하였다. 잘못된 보수를 바로잡기 위한 복원 노력이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다. 석굴 앞의 목조건물 역시 이때 지은 것이다. 석굴은 유리로 막아 내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석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