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인지재
경산 인지재 Injijae Hall, Gyeongsan |
|
대표명칭 | 경산 인지재 |
---|---|
영문명칭 | Injijae Hall, Gyeongsan |
한자 | 慶山 仁智齋 |
주소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378 |
지정(등록) 종목 | 경산시 향토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제1호 |
해설문
국문
경산 인지재는 임진왜란 때 자인지역에서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한 최문병(1557~1599)이 강학소로 설립한 후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처음에는 인지정사(仁智精舍)라고 불렸으나 이후에 이름을 인지재로 바꾸었다. 최문병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18세기 초에 이곳으로 옮겨 서당으로 활용하였으나, 최문병을 추모하던 용계서원이 서원 철폐령으로 헐린 후 1986년에 복원되기 전까지 인지재에 최문병의 신주를 모셔 추모하였다.
최문병은 임진왜란 때 자인현의 선비로 의병을 일으켜 공적을 세운 의병장으로 자인현에 침입하려는 왜구를 사전에 차단하여 피해를 최소화하였고, 영천성 탈환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1598년에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해산하였고, 1599년 여름에 병을 얻어 8월 4일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관련 유적으로는 용계서원과 최문병 의병장 묘역과 창의유적이 있으며, 최문병이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말안장이 용계서원에 보관되어 오다가 현재 경산시립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
인지재는 본당과 부속건물로 구성되며, 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 건물이다. 온돌방 2칸과 대청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은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작은 건물임에도 문을 열면 방과 대청을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창호와 공간구성이 돋보인다. 조선 중기 지방 강학소의 건축 구성를 가진 소박한 건물이지만, 의병장 최문병이 수학하다가 임진왜란 때 자인현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킨 장소라는 점에서 경상북도 의병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영문
Injijae Hall, Gyeongsan
Injijae Hall was established by the scholar Choe Mun-byeong (1557-1599) as a lecture hall to teach his students. Later, it was here that Choe raised a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building itself has a quaint architectural style, but it is valuable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civilian armies in the Gyeongsangbuk-do region. The name Injijae means “Hall of Benevolence and Wisdom.”
Choe Mun-byeong was born in Jain-hyeon (part of today’s Gyeongsa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he raised a civilian army and prevented the Japanese from invading the Jain area. He also helped reclaim Yeongcheonseong Fortress. After the war,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disbanded the civilian army, but died the next year from a disease.
In the 18th century, Yonggyeseowon Confucian Academy was established in Wondang-ri to honor Choe Mun-byeong. At this time, Injijae Hall was moved from its original location elsewhere to the premises of the Confucian academy to be used as a village study hall. After the academy was dem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the spirit tablet of Choe Mun-byeong was kept in Injijae Hall until 1986 when Yonggyeseowon Confucian Academy was rebuilt.
In addition to this lecture hall and the Confucian academy, Choe Mun-byeong’s tomb and the site where he established his civilian army are also located in the vicinity. The horse-riding accessories used by Choe Mun-byeong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are kept at the Gyeongsan City Museum.
Injijae Hall consists of a main quarters and an auxiliary quarters. The main quarters has a tiled gable roof and consists of a wooden-floored room on the righ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with a narrow wooden veranda on the left. The doors dividing the underfloor-heated room and the wooden-floored room can be opened to join the two spaces.
영문 해설 내용
인지재는 학자 최문병(1557-1599)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하였다. 최문병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소박한 건축 양식을 보이지만, 경상북도 의병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인지재라는 이름은 ‘인과 지를 갖춘 곳’이라는 뜻이다.
최문병은 원래 자인현 출신의 선비였다. 의병을 일으켜 자인현에 침입하려는 왜구를 사전에 차단하였고, 영천성을 탈환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해산하였고, 1599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18세기 들어 원당리에 최문병을 추모하기 위한 용계서원이 창건되었다. 인지재는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이때 서원으로 옮겨져 서당으로 활용하였다.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헐린 후에는 1986년 서원이 복원될 때까지 최문병의 위패를 인지재에 모셔두기도 하였다.
인지재와 용계서원 외에도, 원당리 인근에는 최문병의 묘소와 창의유적이 있다. 최문병이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말안장이 현재 경산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인지재는 본당과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본당은 맞배지붕 기와집 건물로, 오른쪽의 대청과 왼쪽의 툇마루를 둔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돌방의 문을 모두 열면 방과 대청을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