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윤복 신도비
강진 윤복 신도비 Stele of Yun Bok, Ga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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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강진 윤복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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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of Yun Bok, Gangjin |
한자 | 康津 尹復 神道碑 |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용흥리 산 23-23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203호 |
지정(등록)일 | 2002년 4월 19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강진 윤복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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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강진 윤복 신도비(碑)는 행당 윤복을 기리기 위해 1698년에 세운 비이다. 윤복은 조선 중종 33년(1538)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좌부승지와 광주 목사, 충청도 관찰사 겸 병마 수군절도사 등을 지냈다. 그는 학문에 깊이가 있고 성품이 곧아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안동 대도호부사로 재임할 때에 퇴계 이황(退溪李湟)이 ‘참된 선비요 아결한 사람(眞儒雅人)’이라고 할 정도였다. 호남 사림의 한 축을 형성한 인물이며, 관인의 생활사 자료인 『전라도도사시일록(全羅道都事時日錄)』과 『은대일록(銀臺日錄)』을 남겼다.
신도비의 비문(碑文)은 예조 판서를 지낸 하계 권유가 썼다. 전서는 사헌부 대사헌 권규가 쓰고, 비문은 이조 판서를 지낸 오시복이 썼다. 현재의 비문은 182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 비문에 신도비문을 새로 세우게 된 연유와 원 비문 이후의 후손록을 추가로 기입하였으며, 비문은 행당의 10대손인 윤종겸이 쓰고 전서는 9대손인 윤규로가 썼다.
비좌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일반형의 석비인데, 이수에 새긴 문양들이 특이하다. 원래의 비문을 전면과 후면에 새기고, 추기문을 좌측면과 우측면에 새겼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행당 윤복 신도비는 인물의 행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건립의 절대 연대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비문과 추기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다. 후손들의 분파를 알 수 있어 향토문화사적 가치도 있다.
영문
Stele of Yun Bok, Gangjin
This stele record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Yun Bok (1512-157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un Bok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38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s a local administrator. Being a man of upright character and intelligence, he governed the people well. He aided the poor and repaired local fortresses to protect the area from frequent Japanese invasions.
The stele was first erected in 1698 and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Gwon Yu (1633-1704),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epitaph records the ancestors, descendants, and achievements of Yun Bok.
The current stele had an epitaph added and was re-erected in 1822. The additional epitaph, inscribed on the sides of the stele, was composed by Yun Jong-gyeom (1793-1853), the 10th-generation descendant of Yun Bok. It includes a list of Yun’s descendants born after the stele was erected, and explains why it was re-erected.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윤복(1512~1577)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윤복은 1538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지역에서 현감, 관찰사 등 지방 행정관으로 지냈다. 학문에 깊이가 있고 성품이 곧아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힘쓰고, 일본군이 수시로 침입할 때 성을 보수하였다.
비는 1698년에 처음 세웠고, 조선 후기의 문신인 권유(1633~1704)가 비문을 지었다. 비문에는 선대와 윤복의 행적, 후손에 대해 기록하였다.
현재의 비는 원래의 비문에 내용을 추가해서 182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추가된 비문은 윤복의 10대손인 윤종겸(1793-1853)이 지었다. 신도비의 좌측면과 우측면에 새겨져 있으며, 신도비를 새로 세우게 된 연유와 처음 비문을 쓴 이후의 후손 명단 등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