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 유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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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황 유묵
Calligraphy by Kang Se-hwang
정재호 기자, '표암 강세황의 유묵' 경남 도유형문화재로 지정, 경북문화재신문, 2017.12.14. 기사.
대표명칭 강세황 유묵
영문명칭 Calligraphy by Kang Se-hwang
한자 姜世晃 遺墨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범평리 406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22호
지정일 2017년 12월 4일
분류 유물/일반회화/기록화
수량/면적 1점
웹사이트 강세황 유묵,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이자 화가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남긴 글씨이다. 16세기 후반 강심(姜深)이 쓴 ‘임계정시(臨溪亭詩)’와 김행(金行)의 시를 적었다.

강세황은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고 불릴 정도로 글과 그림에 능했던 인물이다. 남종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킨 당대 예술계의 총아로 단원 김홍도와 자하 신위의 스승이었다. 어릴 적부터 재주가 뛰어났지만 집안이 몰락하면서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해 환갑이 되어서야 벼슬을 얻어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임계정시’는 강심이 감암산 아래 설매마을에서 유유자적한 만년의 삶을 노래한 시이다. 그는 진주에 대대로 살고 있는 진주 강씨 은열공파의 후손으로 강세황에게는 윗대 할아버지가 된다.

김행의 시는 ‘임계정시’에서 운자(韻字)를 따서 지은 것으로 세상사를 떠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읊조린다. 모두 《진양강씨세고(晉陽姜氏世稿)》임계공실기(臨溪公實記) 편에 실려 있다.

영문

Calligraphy by Kang Se-hwang

This is calligraphy by Kang Se-hwang (1713-1791), the most renowned calligrapher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Kang Se-hwang was skilled in poetry, painting, and calligraphy, and was also a deeply insightful critic with broad knowledge. He showed remarkable talent since childhood and dedicated his life to studying classical Chinese, painting, and calligraphic works. He played a central role as the leader of the artistic community and began serving as a civil official late in life. In 1773, he was appointed mayor of Hanseong-bu (today’s Seoul), and in 1781, he supervised the creation of the portrait of King Jeongjo (r. 1776-1800).

This calligraphy includes a poem composed in the late 16th century by Kang Sim (1522-1594), an ancestor of Kang Se-hwang, and a poem written by Kim Haeng (1532-1588). Kim Haeng’s poem was composed by using same rhyme words as used in Kang Sim’s poem. The poem by Kang Sim depicts the free and quiet life he had at Seolmae Village in Jinju in his later years, while the poem of Kim Haeng depicts the life lived in harmony with nature far away from worldly affair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화가였던 강세황(1713-1791)의 글씨이다.

강세황은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능했고, 해박한 지식과 높은 안목을 갖춘 비평가이기도 하였다. 어릴적부터 재주가 뛰어났으며, 평생 학문과 서화에만 전념하였고, 예술계의 총수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773년 뒤늦게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1781년에는 정조(재위 1776-1800)의 어진 제작을 감독하기도 하였다.

이 글씨는 강세황의 선조인 강심(1522-1594)이 16세기 후반에 지은 시와, 강심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김행(1532-1588)의 시를 적었다. 강심의 시는 강심이 진주 설매마을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만년의 삶을 노래한 작품이며, 김행의 시는 세상사를 떠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노래한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