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여 신도비
강선여신도비 Stele of Kang Seon-yeo |
|
대표명칭 | 강선여신도비 |
---|---|
영문명칭 | Stele of Kang Seon-yeo |
한자 | 姜善餘神道碑 |
주소 |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 191-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청양군 향토유적 제16호 |
지정(등록)일 | 2018년 1월 12일 |
수량/면적 | 1기 |
해설문
국문
강선여선생(1574~1647)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06년 사마시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공조좌랑·예조좌랑·병조좌상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후 외직으로 나기길 원해 영천군수를 역임하였고, 1626년에는 면천군수를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나 청양에서 살았다. 1627년 명나라 희종(熹宗)이 죽어 이듬해 진향사(進香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통례원(通禮院)의 좌·우통례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까지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동지충추부사에 이르렀다.
신도비는 당대최고의 유학자였던 우암 송시령이 찬(撰)하고, 동촌당 송준길이 서(書)하였으며, 김수항이 전(篆)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영문
Stele of Kang Seon-yeo
This stele, erected in 1688, record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Kang Seon-yeo (1574-1647),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Kang Seon-yeo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61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he escorted King Injo (r. 1623-1649) to refuge in Namhansanseong Fortress. After retirement,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in Cheongyang. He was said to be a man of great integrity, approaching every matter with objectivity and honesty.
The epitaph was composed by Song Si-yeol (1607-1689) and calligraphed by Song Jun-gil (1606-1672), two of the most influential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강선여(1574-1647)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88년에 세운 것이다.
강선여는 1610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직후 인조(재위 1623~1649)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청양에서 은거하였다. 일을 처리할 때 한결같이 공정하고 정직하였으며, 성품 또한 청렴하였다고 한다.
비문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1606-1672)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