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수 효행 바위
강문수 효행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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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강문수 효행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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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 309-3 |
지정(등록) 종목 | 청양군 향토유적 제33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5월 31일 |
수량/면적 | 1기 |
해설문
국문
강문수 효행 바위는 강문수의 효행을 기리는 글이 새겨진 바위이다.
강문수는 병든 부모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고, 허벅지 살을 드려 치료하였다. 그의 아들과 손자도 효성을 이어받았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85년(철종 6)에 세금을 면제받았다. 당시 현감 성영우는 바위에 ‘강씨세효촌’을 새겨 이들의 효성을 널리 알렸다. 현판이나 비석에 효행 사실을 기록하고 건물을 세운 일반 정려*와 달리 바위에 남긴 것이 독특하다.
- 정려: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
- 철종 6년은 1855년임.
영문
Rock Inscription Commemorating Kang Mun-su for His Filial Devotion
This rock bears an inscription commemorating the filial devotion of Kang Mun-su and his family.
When his parents were ill, Kang Mun-su devotedly took care of them by feeding them blood he took from his finger and his own flesh that he cut off from his thigh. Later, his younger brother, son(s), and grandson(s) also came to be known for their exemplary filial devotion. In 1855, the royal court exempted the Kang's family from taxes in recognition of these virtuous acts, and the local magistrate Seong Yeong-u ordered that this commemorative inscription be made. It can be interpreted to mean “The Village of the Kang Family, Who Have Demonstrated Filial Devotion Across Generations.”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It is unusual for a virtuous person to be commemorated with a rock inscription.
- It says Seong Yeong-u was born in 1761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UB_6JOc_9999_002033&category=dirSer) - 안드리 /// 맞나요?? - 린지
영문 해설 내용
강문수와 그의 가문의 효행을 기리는 글이 새겨진 바위이다.
강문수는 병든 부모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고, 허벅지 살을 드려 치료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그의 집은 1855년 세금을 면제받았다. 이후 강문수의 동생, 아들, 손자도 대를 이어 효성이 깊었다고 한다. 당시 현감 성영우는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대대로 효성이 지극한 강씨 가문의 마을”이라는 뜻의‘강씨세효촌’을 바위에 새겼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이와 같이 바위에 글자를 새긴 것은 특이한 사례이다.
참고자료
- “운곡면 광암2리 강문수·문옥 형제”, 청양신문, 2013.01.28. http://www.c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