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억령
기본 정보
| 이름 | 임억령 |
|---|---|
| 한자명 | 林億齡 |
| 이칭 | 대수(大樹), 석천(石川) |
| 생몰년도 | 1496년~1568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조선 |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 |
정의 및 개요
- 임억령(林億齡, 1496년~1568년)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다. 전남 해남 출신이다.
특징
- 눌재 박상에게서 공부했으며, 1525년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을 시작, 부교리, 사헌부지평, 홍문관교리, 사간 등을 지냈다.
- 을사사화 때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의 행동대장이 되어 대윤의 여러 선비들을 탄핵하자 자책감에 관직을 내던지고 고향 해남에 은거했다.
- 다시 등용되어 강원도관찰사, 담양부사 등을 지내다 사직하고 담양, 해남, 강진 등을 다니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 사위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지은 식영정을 무대로 식영정 20영을 짓는 등 성산가단을 이끌었다.
- 도량이 넓고 청렴결백하며, 시문을 좋아하고, 사장에 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저서로 『석천집』이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임억령 (林億齡)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543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담양 식영정 일원 | 임억령 | 창건주 장인 작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