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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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Lee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0월 18일 (토) 17:13 판 (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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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려는 자와 보듬으려는 자가 만든 서로 다른 풍경: 백화마을과 학동 팔거리

이야기

광주 학동 팔거리에는 서로 다른 의도로 만들어진 두 개의 풍경이 맞닿아 있다. 하나는 통제와 감시의 시선이 깃든 공간, 다른 하나는 상처 입은 이웃을 품으려 한 공간이다.

1930년대 광주천 직강공사 이후 매립지 분양 문제로 광주상민대회가 일어났고, 그 땅 위에는 일본이 주도한 빈민촌 조성이 진행되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전재민들이 모여들자, 학동 일대는 피폐한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팔거리 일대에는 '방면위원'이라 불린 일본 행정 감시망이 깔렸고, 도시는 판옵티콘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한눈에 사람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그 바로 곁에서 다른 움직임도 시작됐다. 김구서민호가 주도해 전재민들을 위해 세운 백화마을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실험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모아 함께 살게 한 이 마을에는 김구가 직접 만든 임시 거처인 말집이 있었다. 그 정신은 오늘날 학동역사공원 속 말집 쉼터로 이어져, 백범의 따뜻한 손길을 전한다.

이후 광주백범기념관이 세워지며, 그 뜻은 지역의 기억으로 남았다. 통제의 공간 학동팔거리와 돌봄의 공간 백화마을은 서로를 비추며, 인간이 만든 도시가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두 얼굴의 역사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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