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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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기본 정보

이름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한자명 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장르 기문
작자 서형수
발표연도 18세기
발표지면 명고전집





정의 및 개요

특징

  •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은 서형수의 문집인 『명고전집(明臯全集)』(간행년 미상) 제8권에 실려있다.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은 서형수가 50세 되던 1798년에 지은 글이다.
  • 서형수는 달성 서씨로, 대제학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차남이며,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동생이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숙부이다. 서명응, 서호수, 서형수, 서유구의 학풍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여 과학, 농학, 천문학, 역학 등의 영역에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에서 서형수는 어제(御題)를 봉안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정조는 서형수에게 직접 쓴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전해주며 인재의 고장인 호남에서 여러 선비와 함께 이를 교정하라고 지시했다. 서형수는 광주의 21읍(邑) 선비들과 함께 고증하여 점검하여 정조에게 이를 바쳤고, 정조는 이 노고에 보답하여 손수 쓴 과체문(科體文)을 내렸다. 이후 서형수에게 지시하여 어제(御題), 어제조문(御題條問), 어고방목(御考榜目)을 함께 광주향교에 봉안하게 하였다. [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Index URL
웹리소스 한국고전종합DB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582A_0090_010_0170_2020_003_XML
웹리소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형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294

주석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Remark(Note)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서형수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은 서형수가 지었다.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광주향교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은 광주향교와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