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 |
|---|---|
| 한자명 | 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
| 장르 | 기문 |
| 작자 | 서형수 |
| 발표연도 | 18세기 |
| 발표지면 | 명고전집 |
정의 및 개요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는 서형수(徐瀅修, 1749~1824)가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을 세울 때 지은 기문이다.
특징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는 서형수의 문집인 『명고전집(明臯全集)』(간행년 미상) 제8권에 실려있다. 서형수가 50세 되던 1798년에 지은 글이다.
- 서형수는 달성 서씨로, 대제학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차남이며,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동생이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숙부이다. 서명응, 서호수, 서형수, 서유구의 학풍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여 과학, 농학, 천문학, 역학 등의 영역에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에서 서형수는 어제(御題)를 봉안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정조는 서형수에게 직접 쓴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전해주며 인재의 고장인 호남에서 여러 선비와 함께 이를 교정하라고 지시했다. 서형수는 광주의 21읍(邑) 선비들과 함께 고증하여 점검하여 정조에게 이를 바쳤고, 정조는 이 노고에 보답하여 손수 쓴 과체문(科體文)을 내렸다. 이후 서형수에게 지시하여 어제(御題), 어제조문(御題條問), 어고방목(御考榜目)을 함께 광주향교에 봉안하게 하였다. [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고전종합DB | 광주향교의 어제 봉안각에 대한 기문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582A_0090_010_0170_2020_003_XML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형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294 |
주석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 서형수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는 서형수가 지었다. | ||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 광주향교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는 광주향교와 관련이 있다. | ||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光州鄕校御題奉安閣記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장 어고방 | 광주향교어제봉안각기는 어고방과 관련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