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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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루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8일 (금) 00:27 판 (새 문서: == Definition == * 「불면의 흉장」: 권일송의 시. * 1957년 《한국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권일송의 등단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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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그날로부터 묻어두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제 스스로의 분노에, 이빨을
물어, 불면의 밤을 지니는 것.

점성(占星)의 왕자가 잠 못 이루는
그러한 요적(寥寂)이, 이것인가ㅡ
산 같은 해일(海溢)이 밀려간 후일(後日)에
씨앗 한 톨, 키우지 못한, 음악의 주변.

​어제는, 저쪽 담이 헐리우고,
오늘은 이켠 돌이 밀리워.

​쥐들도 다니는 외딴 역에서, 황가(黃哥)
박가(朴哥)들은, 어인 염치도 없는 싸움뿐.
바람은 오히려, 제 육신에 오는 균열(龜裂)을, 허허(虛虛) 벌판에서 울어 보내고,
이윽고, 시인의 가슴에 안겨오는, 찢기운 조국

​꽃이 이운 한낮, 벌레 울음도 그친, 밋밋한 돌담 틈에서, 어느 때부터선가, 물이랑은 이는 것. 소리도 없이, 아픔을 느끼는 억울함에 산다. 울음뿐인가 ― 그것뿐인가.
형들은 아우를 위해, 더욱 착한 나무로 서고, 누이는 오빠를 아껴, 더욱 깊은 지혜에 누우라. 우리와 더, 크게 이웃하는 욕정이, 찢기운 표상(表象) 아래, 머 ― ㄹ 리 기(旗)를 묻는다. 

​가슴팍이 채이워, 피를 토한 채로다.
의미도 없는 색상들이 퍼덕여오는, 그것은 너, 우직한 손.
울리리라. 바다와 같은 바다는, 기어이 열리리라. 부르며, 
불리우는 형제와 같은 소리.

​미쳐 돌아가는 용녀(龍女)의 춤을 멎게 하는, 천동(天動)의 한바탕은 울려야 했을 게다. 그날로부터 묻어두고 생각하는 것은… 불면은 오히려, 출발에 가까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