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엄은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자는 문중(文中), 호는 양촌(楊村),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남구 양림동에서 1552년 출생하였다. 1558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정자로 임명되었고 이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홍문관 수찬 등을 거쳐 1569년 여산군수에 임명되었다. 사헌부 장령, 홍문관 교리를 거쳐 종시부 첨정 지제교로 명종실록 편찬에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뒤에 남원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매우 좋게 여겼다는 전라감사의 보고가 있었다. 1574년(선조 7)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자 나주목사를 자청하였다. 몸소 약을 달이며 어머님을 정성껏 간병하였으나 1597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사를 치른 뒤 죽었다. 정엄의 효행을 귀감으로 삼고자 1611년(광해 3)에 사헌부 대사헌에 증직하고, 양림동에 효자정려(효자_광주_ 정공엄지려)를 세웠다. 현재의 정려는 원래의 정려가 퇴락하여 1975년 후손들이 석조(石造)로 다시 세운 것이다. 정려 앞에 세워진 충견상은 정엄이 기르던 충성스러운 개를 기리는 것으로 이에 관련된 구비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동개비라는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