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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와 사우로 읽는 청송 심씨 사람들
이야기
청송 심씨의 이름은 광주 동호동 일대의 정자와 사우에 깊게 새겨져 있다. 만취정은 그 중심에 서 있다. 1913년, 조선 말기의 문인 심원표가 세운 이 정자는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낸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그는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냈고, 그의 뜻은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남동영당에 기려졌다.
만취정의 현판에는 당대 서화가의 손길이 얹혀 있다. 하나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항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윤용구의 필체로 전해진다. 두 현판은 각각의 시대에 걸쳐 남겨졌으나, 모두 정자의 주인 심원표의 학문과 절개를 기리는 뜻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판들은 만취정이 단순한 정자를 넘어, 문인과 예술가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정자 가까이에는 동호사가 자리한다. 이곳은 심덕부, 심징, 심석준, 심선, 심풍, 그리고 심광헌 등 청송 심씨 일가를 모신 사우다. 그 중 심광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2세의 나이에 정예병을 모아 이순신의 부대에 합류해 옥포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했다. 충절의 가문은 그렇게 세대를 이어 나라를 지켰다.
이후 후손 심풍은 유배의 길에서도 학문을 잃지 않았고, 다시 심원표로 이어지며 문필과 절개를 계승했다. 동호동의 세 건축물—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은 서로 이웃하며, 충과 학, 그리고 예의 정신이 흐르는 공간으로 남았다. 정자의 처마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시대를 넘어 선조들의 기품과 글 향이 지금도 스며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