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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 광주_태봉산은 광주시 북구 신안동 121번지 일대에 있었던 산이다. 높이 약 50m, 면적 약 3천평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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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_태봉산|광주_태봉산]]은 광주시 북구 신안동 121번지 일대에 있었던 산이다. 높이 약 50m, 면적 약 3천평 정도의 작은 산이며 들판에 그릇을 홀로 엎어놓은듯한 모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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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숲|유림숲]]은 광주읍성의 북문 쪽(충장로 5가와 광주일고 인근)에서 현재의 누문동, 유동, 임동을 거쳐 무등경기장 정문 쪽까지 이어져 있던 울창한 숲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인공숲으로 추측되며, 300여 년간 광주를 숲의 고장으로 지켜왔으나 1968년에 시가지 정비 계획이 추진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태봉산, 경양방죽과 같은 시기에 없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수립된 [[광주 시가지 계획]] (1939년)때부터 헐릴 예정이었고, 1967~1969년에 [[광주 시가지 정비 계획]]에 따라 산을 허물고 흙을 [[경양방죽]] 을 메우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 때 태봉산과 경양방죽이 함께 없어진 것이다. 산이 있던 자리에는 도로와 [[광주역]]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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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은 후 거기에 숲을 만들었는데, 유림숲도 중의 하나이다. 이 숲들은 수해를 방지하는 기능과 함께 바람도 막아주고 전시에는 수비를 용이하게 해주는 역할까지 해주었다. 광주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숲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광주에서 행여나 좋은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을 유림숲이 막아준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숲의 이름처럼 버드나무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의 종류도 80여 종으로 차차 다양해지고 규모도 울창해졌다.  
*[[태봉]]이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왕실의 태를 묻은 곳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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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광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갈때 이 길을 거쳐 장성을 지나 상경하였고, 반대로 한양에서 광주읍성으로 들어올때는 반드시 이 숲 길을 지나야 했다. 광주에 부임한 지방 수령들은 여기에서 사슴, , 호랑이 등을 사냥하기도 했는데, 입을 모아 유림숲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칭송했다고 한다.
*[[광주_태봉산]]에 묻힌 태의 주인은 1928년 7월에 우연히 드러났다. 그 해 여름, 광주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가뭄의 원인을 태봉산에서 찾으려 하였다. 산 사람의 태를 묻어야 하는 태봉산에, 누군가 몰래 죽은 자의 무덤을 쓰면 그 마을에 가뭄과 같은 불행이 생긴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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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로, 병원, 학교, 공장시설, 주택가 등이 들어섰고, 현재는 유동, 임동 동네 이름에서만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호미를 들고 몰려가서 산을 판 결과 무덤이 아닌, [[태실]] 과 그 관련 유물이 발견되었다. [[태지석]] 에 의하면 태의 주인은 1624년에 출생한 애기씨 대군(아기 대군)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그를 [[인조]] 의 넷째 아들 [[용성대군]] (1624~1629)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봉산과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인조 2년에 발생한 [[이괄의 난]] (1624)으로 인조와 [[인열왕후]] 는 공주까지 피신해야 했는데, 난이 진압된 후에 용성대군이 태어났다. 그런데 왕자는 태어난 직후부터 유난히 병치레가 심했고, 이에 인열왕후는 아기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중에 꾼 꿈 속에서 백발도사가 나타나 왕자의 태를 다른 곳, 즉 '여의주 모양의 광주 고을'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래서 왕후는 원래 계룡산에 묻었던 왕자의 태를 [[광주_태봉산]] 으로 옮겼다.
 
*위의 전설이 만들어진 시기가 1928년의 '파묘 소동' 이전이었는지, 이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태봉산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태봉산 유래비]] 만 남아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태실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야외에, 태항아리, 태지석 관련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 에서 볼 수 있다.
 
  
 
==Semantic Data==
 
==Semantic Data==

2022년 8월 20일 (토) 16:01 판

Definition

  • 유림숲은 광주읍성의 북문 쪽(충장로 5가와 광주일고 인근)에서 현재의 누문동, 유동, 임동을 거쳐 무등경기장 정문 쪽까지 이어져 있던 울창한 숲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인공숲으로 추측되며, 300여 년간 광주를 숲의 고장으로 지켜왔으나 1968년에 시가지 정비 계획이 추진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태봉산, 경양방죽과 같은 시기에 없어졌다.
  • 조선은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을 쌓은 후 거기에 숲을 만들었는데, 유림숲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숲들은 수해를 방지하는 기능과 함께 바람도 막아주고 전시에는 수비를 용이하게 해주는 역할까지 해주었다. 광주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이 숲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광주에서 행여나 좋은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을 유림숲이 막아준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숲의 이름처럼 버드나무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의 종류도 80여 종으로 차차 다양해지고 규모도 울창해졌다.
  • 옛날에는 광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갈때 이 길을 거쳐 장성을 지나 상경하였고, 반대로 한양에서 광주읍성으로 들어올때는 반드시 이 숲 길을 지나야 했다. 광주에 부임한 지방 수령들은 여기에서 사슴, 꿩, 호랑이 등을 사냥하기도 했는데, 입을 모아 유림숲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칭송했다고 한다.
  • 유림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로, 병원, 학교, 공장시설, 주택가 등이 들어섰고, 현재는 유동, 임동 등 동네 이름에서만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광주_태봉산 Place 자연 광주_태봉산(胎峰山) ) 광주_태봉산 光州胎峰山 Gwangju_Taebong Mt. http://dh.aks.ac.kr/~gwangju/wiki/index.php/광주_태봉산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광주_태봉산 태봉산_유래비 산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안내석
광주_태봉산 신안동 위치
광주_태봉산 이괄의_난 관련 사건
광주_태봉산 용성대군 태의 주인
용성대군 인조 아들-아버지
용성대군 인열왕후 아들-어머니
광주_태봉산 태실 1928년에 발견됨
광주_태봉산 태항아리 1928년에 발견됨
광주_태봉산 광주시가지계획 1939년 수립된 계획(태봉산 허무는 계획 포함)
광주_태봉산 광주시가지정리계획 1967~1969년에 태봉산을 허문 도시 계획
광주_태봉산 광주지도(1872) 태봉산 기록이 있는 지도
광주_태봉산 태실비 원래 태봉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던 목제 비
광주_태봉산 야마모토_데스타로 1930년대에 태봉산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씀
광주_태봉산 광주군사 (光州郡史) 야마모토 데스타로가 쓴 책
광주_태봉산 조선호남지 1935년에 쓰여진 책(태봉산 관련 한시 기술)
광주_태봉산 호남문화연구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가 발행(태봉산 관련 한시 기술)
광주_태봉산 경양방죽 산을 허물어 저수지를 메꿈
광주_태봉산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야외에 태실 전시
광주_태봉산 국립광주박물관 태항아리, 태지석 소장
광주_태봉산 매일신보 1928년 태봉산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한 기사 게재
광주_태봉산 선원록 태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왕실 족보

Spatial Data

id 위도 경도 고도 주소
광주_태봉산 35.165054 126.904997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121



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 url
해설 광주광역시 시청각자료실 태봉산 http://gjarchive.kr/cp05/3731
해설 광주광역시 서구 문화원 빛고을 문화 태봉산 태실 http://www.gjsgcc.or.kr/ko/28/view?SEQ=1106&page=1&categoryCD=03
해설 광주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 태봉산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03
참고 오마이뉴스 태봉산이 있었는데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요?(2021-04-22, 김희태 시민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7378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태봉산(2008-06-18, 조광철 학예연구사-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115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사라진 태봉산, 진실은 어디로(2015-08-25, 조광철)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67442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태실의 주인, 전설과 기록 사이(2015-09-08, 조광철)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67783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경양방죽과 운명을 함께한 태봉산(2017-05-09, 조광철)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0047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네(2020-07-13, 조광철)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01076
참고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 태의 주인은 누구였을까?(2022-01-10, 조광철)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12314

Bibliography

type bibliographic_index online_resource url
논문 조상현, 「광주 태봉산 전설의 재구성」, 『호남학』,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2019. Kiss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691100
단행본 변동명,김희태,이옥희,배재훈,조상현,『(광주 역사와 함께 한) 경양방죽 그리고 태봉산 』,전남대학교 출판문화원, 2020. 국립중앙도서관

https://doi.org/10.978.896849/7186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