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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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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C094|삶으로 응답한 실천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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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02|언론인 최원순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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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06|학교에서 공장까지, 민족 부흥을 꿈꾼 지도자 양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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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71|일제강점기 비행조종자격증을 땄지만 비행 조종 빼고 다 해본 조성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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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04|화가 오지호: 예술로 실천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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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4일 (일) 16:30 기준 최신판

언론인 최원순의 활동

이야기

최원순(崔元淳, 1896~1936)은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호는 석초(石蕉)·석아(石啞)였다.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을 주도하며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 독립운동 조직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귀국 후 그는 광주 3.1운동의 전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7년 2월 안재홍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여 민족주의·사회주의 진영 연대운동에 앞장섰다.

언론인으로서도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1926년 8월 22일자 ‘횡설수설’에서 “총독정치는 조선인을 이롭게 하는 인사는 박해하고, 해롭게 하는 자는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악당 보호정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여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른 뒤 고향 광주로 내려온 그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장을 맡으며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에 힘썼다. 또한 최흥종과 함께 민중계몽과 빈민구제를 목표로 한 지역 유지 모임인 계유구락부를 결성하였다.

최원순의 삶은 독립운동, 언론 활동, 사회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례로, 1920~30년대 광주와 조선의 항일운동사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