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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24일 아침에는 창평현령이 찾아와 [[서하당]]에서 연회를 열고 시회가 이어졌으며, 이후 식영정으로 자리를 옮겨 풍류를 나누었다. [[고경명]]은 만취한 채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나 [[무등산]]의 푸른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유서석록]]』은 이를 유람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록하며, 산행이 누정의 교유와 풍류 속에서 마무리되었음을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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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6일 (목) 00:21 기준 최신판
고경명의 무등산 여행기: 누정의 풍류로 유람을 마무리하다
이야기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임훈(林薰, 1500~1584) 일행과 함께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무등산 일대를 유람했다. 『유서석록(遊瑞石錄)』은 이 다섯 날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으로, 23~24일에는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중심으로 누정의 풍류로 유람을 마무리한 장면을 전한다.
화순 적벽 일대를 지나온 일행은 소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영한 별서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 누정이었다. 시냇물이 담장을 뚫고 뜰을 감돌며 조담이라 불린 폭포 아래로 흘러내렸고, 노송과 대숲,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은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소쇄원48영(瀟灑園四十八詠)」에 묘사된 그대로였다. 이날 양산보의 아들 양자정(梁子渟, 1527~1597)이 임훈과 고경명 일행을 위해 간소한 연회를 마련하였다.
밤에는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을 위해 창건한 식영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성원은 이번 무등산 유람의 일행 중 한 사람으로, 식영정 인근에 자신의 호를 따서 당호 서하당을 지었다. 고경명은 이곳에서 일행과 시를 짓고 술을 나누며 풍류를 즐겼고, 환벽당, 제월당, 광풍각 등 인근 누정과 이어지는 교유의 전통을 되새겼다.
24일 아침에는 창평현령이 찾아와 서하당에서 연회를 열고 시회가 이어졌으며, 이후 식영정으로 자리를 옮겨 풍류를 나누었다. 고경명은 만취한 채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나 무등산의 푸른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유서석록』은 이를 유람의 마지막 장면으로 기록하며, 산행이 누정의 교유와 풍류 속에서 마무리되었음을 전한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