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142"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광주문화예술인문스토리플랫폼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야기)
(이야기)
4번째 줄: 4번째 줄:
  
 
== 이야기 ==
 
== 이야기 ==
청송 심씨의 이름은 광주 동호동 일대의 정자와 사우에 깊게 새겨져 있다. [[만취정]]은 그 중심에 서 있다. 1913년, 조선 말기의 문인 [[심원표]]가 세운 이 정자는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낸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그는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냈고, 그의 뜻은 후대의 제자들에 의해 [[남동영당]]에 기려졌다.
+
[[광주광역시_광산구|광주 광산구]] 동호동에는 세월을 넘어 청송 심씨 가문의 자취가 깃든 정자와 사우가 남아 있다. 그 중심에는 우국지사 [[심원표]]있다. 그는 1913년,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내고자 한다"는 뜻으로 [[만취정]]을 세웠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고 문인들과 교류하던 학문의 장이자, 마음을 닦는 수양의 공간이었다. 정자에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쓴 현판과, 문신 윤용구의 글씨가 걸려 있어, 그가 지녔던 학문과 예술의 품격을 전한다.
  
[[만취정]]의 현판에는 당대 서화가의 손길이 얹혀 있다. 하나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항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윤용구의 필체로 전해진다. 두 현판은 각각의 시대에 걸쳐 남겨졌으나, 모두 정자의 주인 [[심원표]]의 학문과 절개를 기리는 뜻에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판들은 만취정이 단순한 정자를 넘어, 문인과 예술가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
그의 제자들과 후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 1946년 [[남동영당]]을 세워 [[심원표]]를 기렸다. 영당에는 후손 [[심종대]]와 [[심한구]]가 함께 모셔져, 한 가문의 정신적 맥이 이어진다. 인근의 [[동호사]]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한 [[심광헌]]까지, 청송 심씨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정자 가까이에는 [[동호사]]가 자리한다. 이곳은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그리고 [[심광헌]] 등 청송 심씨 일가를 모신 사우다. 그 중 [[심광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2세의 나이에 정예병을 모아 [[이순신]]의 부대에 합류해 옥포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했다. 충절의 가문은 그렇게 세대를 이어 나라를 지켰다.
+
또 다른 정자인 [[호은정]]은 문인 [[심노옥]]이 설계하고, 그의 아들 [[심원하]]가 일제강점기에 세운 곳으로,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학문과 도덕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렇게 [[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 [[호은정]]서로 이웃한 자리에 서서, 학문과 절의, 그리고 후손의 효심으로 엮인 한 가문의 정신사를 전하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정자의 기둥마다, 청송 심씨 사람들이 걸어온 세대의 길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이후 후손 [[심풍]]은 유배의 길에서도 학문을 잃지 않았고, 다시 [[심원표]]로 이어지며 문필과 절개를 계승했다. 동호동의 세 건축물—[[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은 서로 이웃하며, 충과 학, 그리고 예의 정신이 흐르는 공간으로 남았다. 정자의 처마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시대를 넘어 선조들의 기품과 글 향이 지금도 스며 있다.
 
  
 
== 스토리 그래프 ==
 
== 스토리 그래프 ==

2025년 10월 15일 (수) 20:22 판

정자와 사우로 읽는 청송 심씨 사람들

이야기

광주 광산구 동호동에는 세월을 넘어 청송 심씨 가문의 자취가 깃든 정자와 사우가 남아 있다. 그 중심에는 우국지사 심원표가 있다. 그는 1913년, "소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만년을 보내고자 한다"는 뜻으로 만취정을 세웠다. 이곳은 후학을 가르치고 문인들과 교류하던 학문의 장이자, 마음을 닦는 수양의 공간이었다. 정자에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쓴 현판과, 문신 윤용구의 글씨가 걸려 있어, 그가 지녔던 학문과 예술의 품격을 전한다.

그의 제자들과 후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 1946년 남동영당을 세워 심원표를 기렸다. 영당에는 후손 심종대심한구가 함께 모셔져, 한 가문의 정신적 맥이 이어진다. 인근의 동호사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 심덕부, 심징, 심선, 심풍,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휘하에서 옥포해전노량해전에 참전한 심광헌까지, 청송 심씨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또 다른 정자인 호은정은 문인 심노옥이 설계하고, 그의 아들 심원하가 일제강점기에 세운 곳으로,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학문과 도덕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렇게 만취정, 남동영당, 동호사, 호은정은 서로 이웃한 자리에 서서, 학문과 절의, 그리고 후손의 효심으로 엮인 한 가문의 정신사를 전하고 있다. 바람이 머무는 정자의 기둥마다, 청송 심씨 사람들이 걸어온 세대의 길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