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3-101d"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광주문화예술인문스토리플랫폼
(→Semantic Data) |
|||
45번째 줄: | 45번째 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Notes== | ==Notes== |
2024년 4월 7일 (일) 19:32 기준 최신판
5.18민주화 운동-학교교육과정연계 》광주의 따뜻한 봄
Story
- 1980년 5월 25일
제 3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리고,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하는 등 이 비상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 1980년 5월 26일
제 4, 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립니다. 5.18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들불야학의 윤상원이 투사회보와 함께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시민군은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를 하고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날 밤부터는 시내전화도 되지 않습니다.
- 1980년 5월 27일
아침이 오기 전 새벽 4시.
계엄군은 도청 주변 완전 포위하고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퍼부어 광주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비록 당시는 이렇게 끝난 것 같았지만, 광주의 봄은 돌고 돌아 결국 오게 되었습니다.
‘임을_위한_행진곡’이라는 추모곡을 통해 5.18을 기념하고 있으며, 이 노래는 다른 나라의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5.18에 관련된 기록들이 모여져 유네스코에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등제 되었습니다. 또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희생자들을 모시기 위한 국립5.18민주묘지도 조성되어 광주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S2023-101b | Story | Episode | 광주의 따뜻한 봄 | http://dh.aks.ac.kr/~gwangju/wiki/index.php/S2023-101d | http://dh.aks.ac.kr/~gwangju/icon/episode.png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