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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
*거북이 멀리 떠나 버린다면 광주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덜미 자리에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 *거북이 멀리 떠나 버린다면 광주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덜미 자리에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 ||
− | *탑의 높이는 7M로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1층 기단위에 탑을 세웠는데, 이는 통일 신라 시대의 2층 기단 양식과는 다른 고려 시대의 양식이다. 지붕돌과 몸돌의 크기가 적절하고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 + | *탑의 높이는 7M로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1층 기단위에 탑을 세웠는데, 이는 통일 신라 시대의 2층 기단 양식과는 다른 고려 시대의 양식이다. |
+ | *지붕돌과 몸돌의 크기가 적절하고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 ||
*광주 동 오층석탑으로 불리던 지산동 오층석탑과 비교하여, 광주 서오층석탑으로 불리다가 2010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 *광주 동 오층석탑으로 불리던 지산동 오층석탑과 비교하여, 광주 서오층석탑으로 불리다가 2010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 ||
*1961년에 탑을 보수할 때, 2층 몸돌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1961년에 탑을 보수할 때, 2층 몸돌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
2024년 3월 30일 (토) 15:27 판
목차
광주의 탑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국가유산소개글)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상징적으로 모셨다고 한다.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 과거에는 광주의 동쪽에 있는 탑이라서 광주동오층석탑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2층 바닥돌위에 몸돌부를 5층으로 쌓고, 그 위에는 머리장식을 올렸다.
-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바닥돌은 여러 개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부와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어져 있다.
- 특히 1층 지붕돌받침만 다섯 단이고, 2층 부터는 각 단이 네 단으로 되어 있어서 통일 신라 시대 후기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 1955년 해체 보수 공사를 하면서 4층 지붕돌 아래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각주
사리장치 :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을 보관하는 함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국가유산소개글)
-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거북이 멀리 떠나 버린다면 광주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덜미 자리에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 탑의 높이는 7M로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1층 기단위에 탑을 세웠는데, 이는 통일 신라 시대의 2층 기단 양식과는 다른 고려 시대의 양식이다.
- 지붕돌과 몸돌의 크기가 적절하고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 광주 동 오층석탑으로 불리던 지산동 오층석탑과 비교하여, 광주 서오층석탑으로 불리다가 2010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 1961년에 탑을 보수할 때, 2층 몸돌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