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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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백련(1891~1977)은 한국 남종화의 대가이다.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자는 행민(行敏), 호는 의재(毅齋) · 의재산인(毅齋散人) · 의도인(毅道人)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경언과 박동예 사이 여섯 남매 중 장남이다.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법정학을 공부하다가 귀국 후 화가에 뜻을 두었다.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 묵화를 배우고 일본 남화가(南畫家)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 산수화를 추구했다. 1927년 광주에 정착하고 1938년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하여 호남 서화계를 이끌며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재 광주 학동증심사역 인근에 허백련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허백련의 호를 딴 의재로가 학동과 운림동을 연결하고 있다. 해방 이후 허백련이 살던 춘설헌은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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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백련(1891~1977)은 한국 남종화의 대가이다.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자는 행민(行敏), 호는 의재(毅齋) · 의재산인(毅齋散人) · 의도인(毅道人)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경언과 박동예 사이 여섯 남매 중 장남이다.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법정학을 공부하다가 귀국 후 화가에 뜻을 두었다.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 묵화를 배우고 일본 남화가(南畫家)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 산수화를 추구했다. 1927년 광주에 정착하고 1938년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해 호남 서화계를 이끌며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재 광주 학동증심사역 인근에 허백련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허백련의 호를 딴 의재로가 학동과 운림동을 연결한다. 해방 이후 허백련이 살던 춘설헌은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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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3일 (수) 19:20 판

Definition

  • 허백련(1891~1977)은 한국 남종화의 대가이다.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자는 행민(行敏), 호는 의재(毅齋) · 의재산인(毅齋散人) · 의도인(毅道人)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경언과 박동예 사이 여섯 남매 중 장남이다.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법정학을 공부하다가 귀국 후 화가에 뜻을 두었다.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 묵화를 배우고 일본 남화가(南畫家)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의 영향을 받아 정통 남종 산수화를 추구했다. 1927년 광주에 정착하고 1938년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해 호남 서화계를 이끌며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재 광주 학동증심사역 인근에 허백련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허백련의 호를 딴 의재로가 학동과 운림동을 연결한다. 해방 이후 허백련이 살던 춘설헌은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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