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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부에 표류했다. 반년 만에 한양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을 썼다. 그는 수차(水車:踏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후일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부에 표류했다. 반년 만에 한양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을 썼다. 그는 수차(水車:踏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후일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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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4일 (금) 05:21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부에 표류했다. 반년 만에 한양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을 썼다. 그는 수차(水車:踏車)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후일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