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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9일 (일) 23:58 판
호남 지역 대표 문인 이선제의 묘지 밀반출과 환수 이야기
이야기
조선 전기의 문인이자 호남 지역의 대표적 인물인 이선제(李先齊)는 사후 이선제 묘에 안장되었고, 그의 위패는 필문이선제부조묘(畢門李先齊不祧墓)에 봉안되었다. 이 묘 근처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그의 삶과 죽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문화재였다. 그러나 1998년, 한 문화재감정위원이 김해공항에서 반출 불허를 판정했음에도, 매수된 세관원의 조작으로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묘지는 이후 일본인 소장자 도도로키 구니에가 이를 기증하면서 귀환하게 되었다. 이 환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주도로 진행되었으며,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 복잡한 여정은 단순한 유물의 반환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지역 정체성과 역사적 기억을 되찾는 일이었다.
이선제를 기리는 괘고정수축제가 매년 필문이선제부조묘에서 열리며, 그의 문화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사라졌던 묘지석의 귀환은 단절된 과거의 한 조각이 복원되는 순간이었고, 그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기억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필문이선제부조묘 | http://aks.ai/GC60001043 |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 http://aks.ai/GC60001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