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시민아파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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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판자촌 자리에 세워진 서민 아파트이다. 광주 최초의 연립형 아파트이며 3개동 18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윤상원 열사가 들불야학에서 강사로 활동할 때 세 들어 살기도 했고, 야학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이 모여 뒷풀이 시간을 함께 했던 곳이다. 나중에는 이곳에서 야학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5.18민주화운동]] 기간에는 들불야학에 속한 열사들이 모여 '투사회보'를 발간하였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돈을 모아 회보 발간에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재개발의 바람 속에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3개의 동 중에서 '나'동만 존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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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판자촌 자리에 세워진 서민 아파트이다. 광주 최초의 연립형 아파트이며 3개동 18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윤상원]] 열사가 [[들불야학]]에서 강사로 활동할 때 세 들어 살기도 했고, 야학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이 모여 뒷풀이 시간을 함께 했던 곳이다. 나중에는 이곳에서 야학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5.18민주화운동]] 기간에는 [[들불야학]]에 속한 열사들이 모여 '투사회보'를 발간하였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돈을 모아 회보 발간에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재개발의 바람 속에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3개의 동 중에서 '나'동만 존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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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8일 (월) 17:50 판

1970년에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판자촌 자리에 세워진 서민 아파트이다. 광주 최초의 연립형 아파트이며 3개동 180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윤상원 열사가 들불야학에서 강사로 활동할 때 세 들어 살기도 했고, 야학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이 모여 뒷풀이 시간을 함께 했던 곳이다. 나중에는 이곳에서 야학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5.18민주화운동 기간에는 들불야학에 속한 열사들이 모여 '투사회보'를 발간하였던 곳이다. 이곳 주민들이 돈을 모아 회보 발간에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재개발의 바람 속에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3개의 동 중에서 '나'동만 존치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