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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양루|절양루]]는 광주읍성 4대문 중에서 북문인 [[공북문]] 앞에 있던 누각의 이름이다. 1669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공북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절양'이라는 이름은 버드나무를 꺾는다는 뜻인데, '이별'을 뜻한다고 한다. 광주읍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주로 절양루에서 환송연을 열었던 데서 기인된 듯하다. 송순(1493~1582), 남구만(1629~1712)등 유명한 관리,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이별의 아쉬움에 대한 시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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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양루|절양루]]는 광주읍성 4대문 중에서 북문인 [[공북문]] 앞에 있던 누각의 이름이다. 1669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공북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절양'이라는 이름은 버드나무를 꺾는다는 뜻인데, '이별'을 뜻한다고 한다. 광주읍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주로 절양루에서 환송연을 열었던 데서 기인된 듯하다. 송순(1493~1582), 남구만(1629~1712)등 유명한 관리,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이별의 아쉬움에 대한 시를 읊었다.  
한편,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가 의병을 불러모아 장렬하게 창의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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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가 400여 명의 의병을 불러모아 진주성으로 가기 전, 장렬하게 창의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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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수) 09:28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절양루는 광주읍성 4대문 중에서 북문인 공북문 앞에 있던 누각의 이름이다. 1669년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공북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절양'이라는 이름은 버드나무를 꺾는다는 뜻인데, '이별'을 뜻한다고 한다. 광주읍에 부임했던 지방관들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주로 절양루에서 환송연을 열었던 데서 기인된 듯하다. 송순(1493~1582), 남구만(1629~1712)등 유명한 관리,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이별의 아쉬움에 대한 시를 읊었다.
  •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가 400여 명의 의병을 불러모아 진주성으로 가기 전, 장렬하게 창의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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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이버광주읍성 절양루 http://gjeupseong.org/sub04/images/sub04_02_0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