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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읍성의 옛 모습, 공북문과 절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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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 이야기 ==
* [[광주읍성|광주읍성]]의 북문인 [[광주읍성_공북문|공북문]] 밖에는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누각인 [[공북루|공북루]]가 있었으며, 이는 ‘[[광주읍성_절양루|절양루(截陽樓)]]’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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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읍성|광주읍성]]의 북문인 [[광주읍성_공북문|공북문]] 밖에는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누각인 [[공북루|공북루]]가 있었으며, 이는 ‘[[광주읍성_절양루|절양루(截陽樓)]]’라고도 불렸다. 절양루는 읍성의 중요한 경관이자 교유 공간으로, 조선 문신 [[송순|송순(宋純)]]이 이곳 문을 소재로 「[[누문별김상사우부樓門別金上舍愚夫]]」를 지어 그 풍경과 인연을 담았다. 또한 조선 후기 학자 [[최태진|최태진(崔台鎭)]]은 「[[광주공북루光州拱北樓]]」라는 시를 남겨 절양루의 정취를 기록하였다.  
* 절양루는 읍성의 중요한 경관이자 교유 공간으로, 조선 문신 [[송순|송순(宋純)]]이 이곳 문을 소재로 「[[누문별김상사우부樓門別金上舍愚夫]]」를 지어 그 풍경과 인연을 담았다.  
 
* 또한 조선 후기 학자 [[최태진|최태진(崔台鎭)]]은 「[[광주공북루|광주공북루]]」라는 시를 남겨 절양루의 정취를 기록하였다.  
 
  
  

2025년 9월 25일 (목) 20:23 기준 최신판


광주읍성의 옛 모습, 공북문과 절양루

이야기

광주읍성의 북문인 공북문 밖에는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누각인 공북루가 있었으며, 이는 ‘절양루(截陽樓)’라고도 불렸다. 절양루는 읍성의 중요한 경관이자 교유 공간으로, 조선 문신 송순(宋純)이 이곳 문을 소재로 「누문별김상사우부樓門別金上舍愚夫」를 지어 그 풍경과 인연을 담았다. 또한 조선 후기 학자 최태진(崔台鎭)은 「광주공북루光州拱北樓」라는 시를 남겨 절양루의 정취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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