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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2일 (수) 23:26 기준 최신판
기본 정보
| 이름 | 증경양한독우제유 |
|---|---|
| 한자명 | 贈景陽韓督郵濟愈 |
| 장르 | 시 |
| 작자 | 이민서 |
| 발표연도 | 1761년경 |
| 발표지면 | 『서하집(西河集)』 |
정의 및 개요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는 이민서(李敏敍, 1633~1688)가 당시 광주 경양찰방에 제수된 한제유에게 보낸 2수(首)의 시다.
특징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는 이민서의 『서하집(西河集)』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 이민서는 본관이 전주이며 1677년에 광주목사를 지냈다.
- 한제유(韓濟愈, 1640~?)는 《승정원일기》 숙종 2년(1676) 8월 1일 기사에 따르면 이 무렵 경양찰방에 제수되었다.
- 첫 번째 시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독우가 말 타고 나는 듯이 달리기에 서울이 멀다 여기냐 물어보았지. 부끄러워라 나는 열흘 만에 고개 넘어, 돌아와 베개 베고 집 안에 누워 있다오.
- 두 번째 시의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역루 동쪽 큰 둑에는 꽃이 피었으리니 만 송이 붉은 연꽃 상상해 보네. 태수는 병들어 와 기력 없으니 명승 차지하고 호방하게 즐길 그대 부럽소.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고전종합DB | 『서하집』 제3권 「칠언절구」 <경양 한 독우 에게 주다>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408A_0030_010_0040_2019_001_XML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이민서 | http://aks.ai/GC60001913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 | 이민서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는 이민서가 작성했다. | ||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 | 한제유 | 증경양한독우제유贈景陽韓督郵濟愈는 한제유를 위해 지었다. | ||
| 한제유 | 경양찰방 | 한제유는 경양찰방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