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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징 == | == 특징 == | ||
| − | * [[ | + | * [[과광주성過光州城]]은 광주성을 지나며라는 뜻으로 정시림이 [[광주읍성]]에 대해 쓴 시다. |
*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 *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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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시림(鄭時林, 1839~1912)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자는 백언(伯彦)이고, 호는 월파(月波)이다. 보성 출신으로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이 있다. | * 정시림(鄭時林, 1839~1912)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자는 백언(伯彦)이고, 호는 월파(月波)이다. 보성 출신으로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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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 (목) 00:30 기준 최신판
기본 정보
| 이름 | 과광주성 |
|---|---|
| 한자명 | 過光州城 |
| 장르 | 시 |
| 작자 | 정시림(鄭時林, 1839∼1912) |
| 발표연도 | 1913년 |
| 발표지면 | 『월파집(月波集)』 |
정의 및 개요
특징
"立立樓臺百尺浮 우뚝 솟은 누대 백 척 높이 떠서 太平歌鼓度春秋 태평시대 노래하며 봄가을을 보낸다 鈴軒老吏閒無事 관청의 늙은 아전 일 없어 한가하니 坐送歸雲瑞石頭 가만히 서석산으로 가는 구름을 보낸다"
- 과광주성過光州城의 광주성은 조선 초기에 동헌과 객사 등 관아가 있는 광주읍성을 가리키며 지금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1가, 충장로우체국 일대에 있었다. 광주읍성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파괴되었다.
- 정시림(鄭時林, 1839~1912)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자는 백언(伯彦)이고, 호는 월파(月波)이다. 보성 출신으로 문집으로 『월파집(月波集)』이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주성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0750 |
| 웹리소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 정시림-過光州城(광주성을 지나며) | http://gjsgcc.or.kr/ko/36/view?SEQ=1262&page=4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과광주성過光州城 | 광주읍성 | 과광주성은 광주읍성을 소재로 지은 시다. | ||
| 과광주성過光州城 | 정시림 | 과광주성은 정시림이 지은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