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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상징적으로 모셨다고 한다. |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상징적으로 모셨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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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바닥돌은 여러 개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부와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어져 있다. |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바닥돌은 여러 개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부와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어져 있다. | ||
*특히 1층 지붕돌받침만 다섯 단이고, 2층 부터는 각 단이 네 단으로 되어 있어서 통일 신라 시대 후기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 *특히 1층 지붕돌받침만 다섯 단이고, 2층 부터는 각 단이 네 단으로 되어 있어서 통일 신라 시대 후기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 ||
− | **1955년 해체 보수 공사를 하면서 4층 지붕돌 아래에서 <ref> | + | **1955년 해체 보수 공사를 하면서 4층 지붕돌 아래에서 '''사리장치'''<ref>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을 보관하는 함</ref>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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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263/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263/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 ||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2024년 3월 30일 (토) 15:46 기준 최신판
목차
광주의 석탑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국가유산 표지판 소개글)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상징적으로 모셨다고 한다.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 과거에는 광주의 동쪽에 있는 탑이라서 광주동오층석탑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 2층 바닥돌위에 몸돌부를 5층으로 쌓고, 그 위에는 머리장식을 올렸다.
-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바닥돌은 여러 개의 돌로 되어 있고, 몸돌부와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이어져 있다.
- 특히 1층 지붕돌받침만 다섯 단이고, 2층 부터는 각 단이 네 단으로 되어 있어서 통일 신라 시대 후기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 1955년 해체 보수 공사를 하면서 4층 지붕돌 아래에서 사리장치[1]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각주
- ↑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을 보관하는 함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국가유산 표지판 소개글)
-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은 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고 불렀는데,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 거북이 멀리 떠나 버린다면 광주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덜미 자리에 오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 탑의 높이는 7M로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1층 기단위에 탑을 세웠는데, 이는 통일 신라 시대의 2층 기단 양식과는 다른 고려 시대의 양식이다.
- 지붕돌과 몸돌의 크기가 적절하고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 광주 동오층석탑으로 불리던 지산동 오층석탑과 비교하여, 광주 서오층석탑으로 불리다가 2010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 1961년에 탑을 보수할 때, 2층 몸돌 안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