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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의 송암동 선사유적지와 지석강 선사유적을 근거로 지역의 역사를 3,000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 인근의 송암동 선사유적지와 지석강 선사유적을 근거로 지역의 역사를 3,000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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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8일 (수) 09:10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칠석동: 과거 '옻돌마을'로도 불렸던 광주 남구의 동.
- 예로부터 칠석동의 터는 소가 쪼그리고 누워있는 모양이었는데, 마을에 은행나무을 심어 터를 누르고 소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고삐를 은행나무에 단단히 묶고, 소의 입 앞에는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어 일곱 개의 돌로 꼬리를 눌러 놓았다. 또한 황소의 기운이 일어서지 못하게 정월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내고, 황소의 기운을 밟아 누르는 고싸움놀이를 벌였다고 한다.
- 마을 앞산에 고인돌 9기가 있으며, 조선 영조 1759년 작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광주목」 41면에 칠석면(漆石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검은 옻 색의 고인돌’이라는 뜻으로 '옻돌마을'이라 불렀던 것을 한자(옻 桼, 돌 石)로 옮겼다고 유추된다.
- 인근의 송암동 선사유적지와 지석강 선사유적을 근거로 지역의 역사를 3,000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고싸움놀이와 함께 '할머니 당산나무'라는 8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에 당산제를 지내는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