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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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鄭澈, 1536년~1593년)의 본관은 연일이며, 자는 계함, 호는 송강이다. 서울 출신이나 청소년기부터 과거급제 후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보낸 전남 담양을 고향으로 아는 사람도 많다. 파란만장한 관직생활로 정치가로서 평가는 엇갈리나 문학적으로는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 을사사화에서 풀려난 아버지를 따라 16살 때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담양으로 이주했다. 환벽당 주인 사촌 김윤제 문하에서 10년 동안 공부했으며, 이외에도 임억령에게 시를 배우고, 송순, 김인후, 기대승에게 사사했다. 식영정 창건주 서하당 김성원, 의병장 제봉 고경명이 함께 공부했다. 26세에 벼슬길에 나서 우의정, 좌의정 등 최고위직까지 올랐으나,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선조의 변덕에 휘둘리면서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다. 특히 정여립의 난으로 비롯된 기축옥사를 주도하면서 동인들을 가혹하게 대해 원한을 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선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이내 동인의 탄핵으로 물러나 강화에 머물다 죽었다.
- 뛰어난 창작능력으로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이 있으며,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걸작들로 국문학사 연구의 중요자료로 평가되며,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자주 수록되고 있다. 문집으로 『송강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