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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노씨 문중의 공간들

이야기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대에는 광산 노씨 문중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조선 전기의 인물 노옥손의 묘에서 출토된 백자와 명기류 36점은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섬세한 유물은 당시의 장례문화와 예술미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문중의 근대사는 학문과 절의, 그리고 교양 공간의 역사로 이어진다. 19세기 후반 유학자 노문규는 은거를 위해 송해당(松海堂)을 중수했고, 그의 후손 노재규원풍정을 다시 세워 후학을 가르쳤다. 일제강점기에는 노종룡이 스승 최익현송병선의 뜻을 이어 소해정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자신의 호 '소해(蘇海)'를 따서 누정의 이름을 붙였고, 훗날 그의 아들 노진영이 이 건물을 만주사의 강당으로 헌납하며 경의재로 개명했다.

만주사는 노종룡과 송병선을 함께 배향한 사우로, 문중의 학맥과 충절을 상징한다. 노석정은 독립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으며, 문중의 지조와 시대의 의식이 한 집안의 맥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광산 노씨 문중의 누정과 사우, 그리고 묘역과 유물은 종중의 유산을 넘어, 조선에서 근대를 거쳐 광주의 정신사로 흐르는 한 계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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