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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인권운동, 광주 형평청년회의 활동
이야기
1920년대는 신분과 계층의 벽이 뚜렷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평등과 인권의 씨앗을 뿌린 이들이 있었다. 1926년, 광주수창초등학교 교사였던 김갑수는 청년들과 함께 광주형평청년회를 결성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사회의식을 일깨우고, 형평의 정신으로 사람 사이의 차별을 없애고자 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형평운동의 흐름 속에서 광주의 인권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그보다 앞선 1923년, 만세암에서는 역사적인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서정희와 남상도 등이 참여해 형평사 광주지사를 세웠고, 이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지사로 기록된다. 형평사 광주지사는 지역의 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과 더불어, 상호부조 단체인 동인공제사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넓혀갔다.
광주형평청년회는 이후 문화와 체육을 매개로 한 인권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축구단 '조우회'를 창단해 경기와 교류를 통해 사회의 벽을 허물고자 했으며, 지역 청년들이 자주적으로 모여 배우고 행동하는 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1933년, 일제는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을 조작해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형평사 회원 100여 명을 체포하며 조직의 해체를 시도했다. 비록 운동은 위축되었지만, 형평사 광주지사와 광주형평청년회의 활동은 광주 지역 인권운동의 초석으로 남아 이후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