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정
기본 정보
| 이름 | 후암정 |
|---|---|
| 한자명 | 後巖亭 |
| 위도(latitude) | 35.2101301 |
| 경도(longitude) | 126.7900176 |
| 종류 | 유적/건물 |
| 건립연도 | 1899년(고종 36년)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안길 6 |
정의 및 개요
건립 배경
- 순천 박씨 박섬동(朴暹東)의 아들인 박노두(朴魯斗), 박노걸(朴魯傑) 두 형제가 박섬동 사후 20년인 1899년(고종 36년)에 건립하였다. 정자명은 오준선이 지었다.
- 유학자 김문옥(金文鈺, 1901~1960)이 지은 「후암정기(後岩亭記)」에, "공이 죽은 20여 년 후에 박섬동의 두 아들 박노두, 박노걸이 공에 대한 애모(哀慕)의 생각이 간절하여 후암정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박섬동은 1879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한때 박섬동의 문하생들에 의해 박섬동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사당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 후 의식이 폐지되면서 정자로 남게 되었다.
건축문화적 특징 및 가치
- 형태는 사각석초(四角石礎) 사각기둥의 건물로 중앙의 거실 1칸을 제외한 좌우 2칸이 마루이며, 마루의 좌우 전면에 덧창문이 설치되어 재실(齋室) 형태로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기와 팔작지붕이었다.
- 건립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현재는 허물어져 부지만 남은 상황이다.
그 외 정보
- 박섬동은 광주 진곡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출신의 문인이다. 호는 후암(後巖)이며, 검암(黔巖) 박치도(朴致道)의 후손이다. 일찍이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벼슬길에 나아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지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후암정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1198 |
| 웹리소스 | 광주서구문화원 | 후암정 後巖亭 | http://gjsgcc.or.kr/ko/26/view?SEQ=2706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후암정 | 진곡동 | 후암정은 진곡동에 있었다. | ||
| 후암정 | 박섬동 | 후암정은 박섬동을 기리는 정자이다. | ||
| 후암정 | 오준선 | 후암정의 이름은 오준선이 지었다. | ||
| 후암정기 | 후암정 | 후암정기에 후암정의 기록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