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처량
기본 정보
| 이름 | 홍처량 |
|---|---|
| 한자명 | 洪處亮 |
| 이칭 | 자회, 북정, 정정 |
| 생몰년도 | 1607~1683년 |
| 성별 | 남성 |
정의 및 개요
특징
-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이다. 사후 수여받은 시호는 정정(貞靖)이다.
- 1650년 (효종 1년)『인조실록』 편찬에 도청(都廳)[1]으로 참여했다. 1654년부터 보덕, 사간, 동부승지, 광주목사 등을 거쳐 판중추부사, 대사헌, 승지 등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 저서로는 『북정집(北汀集)』이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홍처량 (洪處亮)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454?utm_source=chatgpt.com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홍처량 | 광주목사 | 홍처량은 광주목사를 역임했다 |
- ↑ 도청(都廳)은 각종 임시 사안을 관장하기 위한 관직을 뜻한다.(참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