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학
기본 정보
| 이름 | 허명학 |
|---|---|
| 한자명 | 許命鶴 |
| 성별 | 남성 |
| 출생지 | 개성 |
정의 및 개요
특징
- 허명학은 개성출신으로 광주에 먼저 정착한 형인 허명순의 권유로 1926년 5월 26일에 광주로 갔으며 오늘날 금남로 3가 한국은행 자리에서 송도약방이라는 약방을 차렸다. 허명학은 광주로 오기 전에 개성에 있는 이문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 1926년 당시 광주에는 양약방이 몇 개 밖에 없었으며 개성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
- 1931년 5월 3일 이웃집 화재로 허명학이 점포를 잃었고 다만 화재보험인 1천 3백엔으로 충장로 4가에 점포를 사서 허명순과 같이 전기부속품상인 송도전기상회를 차렸다. 송도상회는 2층 건물이었고 1층에는 전기부, 라디오부, 악기부, 결혼식장 장식 재료부, 사진, 액자, 앨범, 화구부, 침대부가 있었다. 2층에서는 사진관을 운영했다. 1933년에 허명학은 형에게 가게를 넘겨주고 충장로 3가에 점포를 다시 개업을 했다. 또한 남동에도 송도전기사라는 이름으로 점포를 차려서 조카인 허신태에게 맡겼다. 당시 그는 전남 일대에 전기부속품 상권을 잡은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 허명학은 광주에서 장경례(張慶禮,1913~1997)를 만나 결혼했다. 장경례는 전라남도 광주 광주면 북정(光州面 北町)에서 태어났다. 장경례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인 1928년 11월에 같은 학교 학생인 장매성(張梅性), 고순례(高順禮), 박옥련(朴玉連) 등 학생과 함께 광주소녀회를 조직하였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간행물 | 단행본 | 박선홍, 『광주1백년①』, 금호문화, 1994. | |
| 웹리소스 | 우리문화신문 | 광주학생운동에 뛰어든 소녀회 회원 장경례 지사(2018-11-01, 이윤옥 기자) |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15348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허명학 | 송도약방 | 허명학은 송도약방의 주인이다. | ||
| 허명학 | 송도전기상회 | 허명학은 송도전기상회의 주인이다. | ||
| 송도약방 | 금남로 | 송도약방은 금남로에 있었다. | ||
| 송도전기상회 | 충장로 | 송도전기상회는 충장로에 있었다. | ||
| 허명학 | 송도전기사 | 허명학은 송도전기사를 열었다. | ||
| 송도전기사 | 남동 | 송도전기사는 남동에 있었다. | ||
| 허명학 | 장경례 | 허명학의 아내는 장경례이다. | ||
| 장경례 | 광주소녀회 | 장경례는 광주소녀회 소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