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개
기본 정보
| 이름 | 장판개 |
|---|---|
| 한자명 | 張判盖 |
| 생몰년도 | 1885년~1937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대한민국 |
정의 및 개요
특징
- 아버지 장석중에게 악기를 배우고 줄타기도 공부하였으나, 판소리에 뜻을 두어 김채만의 고수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으며 다시 송만갑의 고수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다.
- 원각사 폐사 이후에 1908년 조선 후기 예술단체인 광주협률사에 들어가 제자 배설향과 전국 공연을 했다.
- 제자 배설향을 아내로 맞이한 후 상경하여 장안사와 연흥사에서 공연하였다,
- 1920년에 낙향하여 경주권번과 전주권번에서 소리선생으로 제자를 가르치다가 1937년 54세에 세상을 떠났다.
- 어전에서도 소리를 하여 고종으로부터 참봉(參奉) 교지를 받았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잘했으나 특히 「적벽가」를 잘했고, 그 중 장판교(長板橋)싸움의 대목은 일품이었다.
- 그의 아들 장영찬이 판소리명창으로 활동했고, 생질녀인 장월중선은 1993년 경북 경주에서 도문화재로 지정받았다.[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장판개(張判盖)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8862 |
| 웹리소스 | 디지털순창문화대전 | 장판개 | https://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search/GC05901038?keyword=%EC%9E%A5%ED%8C%90%EA%B0%9C&page=1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장판개 | 원각사 | |||
| 장판개 | 광주협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