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역
기본 정보
| 이름 | 선암역 |
|---|---|
| 역사적 시기 | 조선시대 |
| 관련 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의 및 개요
특징
- 원래 광주군 소지면 소촌동 신역마을에 역이 설치되었으나, 정조 때 황룡강 선암나루[1] 근처로 옮겼다.
- 역이 있던 자리는 도로확장공사와 평동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등으로 소실되었다.
-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선암역에는 72호에 304명이 살았고 소속된 노비는 17명이었으며, 말은 6필을 길렀다.
-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를 갈 때 이곳을 지나갔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과 수성군이 대치했던 곳이다.
- 1890년대 일본인이 작성한 자료에 선암역과 선암나루, 중보장터에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지역N문화 | 상경할 때 거쳐가야 했던 선암역과 선암나루 | https://local.nculture.org/r2uyj |
주석
- ↑ 선암나루는 광주와 나주를 최단으로 연결하는 나루로서 서울을 향하거나 나주를 향할 때 이곳을 거쳐가야 했다.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선암역 | 선암나루 | 선암역은 선암나루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