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의
기본 정보
| 이름 | 남효의 |
|---|---|
| 한자명 | 南孝義 |
| 이칭 | 중유(仲柔)(자), 지재(志齋), 지소재(志素齋)(호) |
| 생몰년도 | 1474년~1551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조선 |
정의 및 개요
- 남효의은 조선 중기 사람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조부는 남준(南俊)이고, 부친은 형조판서를 지낸 부호군 남회(南恢)이다.
특징
- 광주목사로 부임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1530년(중종25년) 남효의가 대간으로 재직할 때 물의를 일으켜 광주목사로 삼는 일이 도리에 어긋나 체직했다는 기사를 <<중종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력
1514년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1529년 사간원대사간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거침. 1532년 전주부윤으로 재직하며 선정을 베품. 1534년 한성부우윤, 경상감사 등을 거쳐 1536년 공조참판, 1538년 함경감사 등 고위직에 올랐으며, 1540년에는 사헌부대사헌과 호조참판, 1544년에는 형조판서까지 역임함. 1545년 사헌부에서 그가 늙고 병들어 재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육조의 장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음. 1548년에는 70세가 넘어 기영회(耆英會)에 참석하도록 요청되기도 함.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학호남진흥원 | 광주선생안 - 무진주도독에서 광주광역시장까지(상) | https://www.hiks.or.kr/Translations/2/read/102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남효의 | 광주목사 | 남효의는 광주목사 자리를 제수받았다가 체직되었다 | ||
| 남효의 | 남준 | 남효의의 조부는 남준이다 | ||
| 남효의 | 남회 | 남효의의 부친은 남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