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기본 정보
| 이름 | 김종회 |
|---|---|
| 한자명 | 金宗會 |
| 생몰년도 | 1918년~2000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
정의 및 개요
- 김종회(金宗會, 1918~2000)는 광산농악에서 설장구로 참여했던 사람이었으며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였다.
특징
- 김종회는 1918년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에서 태어났으며 20세의 나이에 영광의 김만석에게 사사받아 설장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주의 강성수, 광주의 최막동에게 설장고를 전수를 받았다.
- 김종회는 임방울극단, 여성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1988년 광산소촌농악 팀에 참여하여 설장고를 담당했다. 1992년에는 정득채, 서창순과 함께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설장고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 광산농악은 정월 대보름에 마을에서 집집을 돌면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한 마을굿에서 기원했다.
- 광산농악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마륵동, 소촌동 등지에서 활동한 농악인들이 구성한 '광산소촌농악' 팀이 1988년 열린 제 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그 틀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광산농악은 마륵동의 판굿 농악을 중심으로 칠석동의 칠석고싸움놀이 농악(칠석농악), 소촌동의 광산농악, 산원동의 풍장농악 등 농악을 집대성한 것이며 넓게는 전라남도 서부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호남 우도농악에 속한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산농악의 상쇠는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 https://www.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5101 |
| 웹리소스 | 광산농악보존 | 광산농악 단원 | https://www.gwangsannongak.com/%ED%8C%80-%EC%86%8C%EA%B0%9C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광산농악(光山農樂)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150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김종회 | 광산농악 | 김종회는 광산농악의 설장구를 맡았다. | ||
| 광산농악 | 마륵동 | 광산농악은 마륵동의 판굿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