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적
기본 정보
| 이름 | 김적 |
|---|---|
| 한자명 | ⾦適 |
| 이칭 | 희정(希正)(자), 취암(鷲巖)(호) |
| 생몰년도 | 1507년~1579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조선 |
정의 및 개요
특징
- 김적의 부친은 승사랑 전 흥양훈도 김수남이다. 무안 몽탄에 거주하며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김충수(⾦忠秀, 1538~?), 김효수(⾦孝秀), 김덕수(⾦德秀), 김재수(⾦載秀), 김진수(⾦振秀)이다.
이력
1537년: 진사가 됨. 1543년: 식년시 문과 병과 19위로 급제함. 1546년: 성균관 학유로 재직 중 과거 시험지 위조 혐의로 승문원 부정자 신여읍과 함께 국문을 받음. 1555년 (을묘왜변): 김제군수로 재직하며 전라도도순찰사 이준경의 중군이 되어 왜구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움. 고성군수 시절: 유신현감으로 있을 때 권세가에 곡식을 보내고 백성들에게 못을 메워 논을 만들게 하여 권세가에게 주는 등 민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이로 인해 간원(諫院)으로부터 탄핵을 받음. 선조는 그의 수령 임명을 허락하지 않음.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학호남진흥원 | 광주선생안 - 무진주도독에서 광주광역시장까지(상) | https://www.hiks.or.kr/Translations/2/read/102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김적 | 광주목사 | 김적은 광주목사를 지냈다 | ||
| 김적 | 김수남 | 김적의 부친은 김수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