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
기본 정보
| 이름 | 광산향교중수기 |
|---|---|
| 한자명 | 光山鄕校重修記 |
| 장르 | 기문 |
| 작자 | 성현 |
| 발표연도 | 1842년 |
| 발표지면 | 허백당집 |
정의 및 개요
-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는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이 광주향교를 중수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기문이다.
특징
-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는 성현의 문집 『허백당집(虛白堂集)』제4권에 실려있다.
-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는 광주향교를 중수한 광산현감 권수평(權守平)의 공적을 칭송하고 있다. 1500년(연산군 6년) 권수평의 이종사촌 동생 박이온(朴以溫)이 성현에게「광산학기(光山學記)」를 써달라고 의뢰하여 작성했다. 박이온은 기대승이 광산김씨의 후예이므로 광주향교를 중수한 내력을 밝혀 달라고 하였는데 이는 기대승의 조모가 광산김씨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권수평이 사재로 백성의 전답을 사 광주향교의 재산으로 삼았으며 조곡과 면포를 학생들에게 비용으로 주고, 또한 사서(四書), 오경(五經) 등을 구비하는 등 십시일반 도와주었고, 광주향교의 건물인 대성전(大聖殿), 동무(東廡), 서무(西廡), 명륜당(明倫堂), 사마재(司馬齋), 동재(東齋), 서재(西齋), 전사청(典祀廳), 아실(衙室) 등을 지었다는 내용이 전반부에 해당한다.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의 후반부는 공자의 도(道)가 지극하여 광산군이 문묘를 숭상하고 현명한 태수를 만나 교화를 이루었으니 광산 백성의 행운이며 조정의 풍교(風敎)가 바르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고전종합DB | 허백당문집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072A_0270_010_0030_2016_005_XML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 | 광주향교 | 광산향교중수기光山鄕校重修記는 광주향교를 새로 건립하며 지은 기문이다. | ||
| 광주향교 | 광산현 강등 사건 | 광주향교는 광산현 강등 사건으로 인해 광산향교로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