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물조각상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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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구리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1월 28일 (화) 20:37 판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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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정의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널리 신봉되는 부처로서 서방 극락정토[1]를 관장하는 부처이다.

요약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를 가리키는 신앙 대상이다. 중국 인도의 범어[2]내용을 따라 무량수불 또는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3]을 세우고 오랜 수행을 거쳐 본원[4]을 성취하고 10겁[5] 전에 부처가 되었는데 지금도 서방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다.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앙에서 정토교[6]가 성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 신앙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사찰에서 극락 전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름

의미

아미타불이란 명칭은 범어로, 아미타바붓다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아미타란 아미타유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음역[7]한 것이고, 무량수, 무령관 등이라고 의역하였다. 즉, 헤아릴 수 없는 수명과 광명을 가졌다는 두 가지 뜻의 음사[8]이며, 따라서 아미타불은 이 두 개의 덕성을 갖춘 부처라는 뜻이 된다.

유래

  1. 끝 없는 삶을 가진 이: 범어 "아미따유스(amitāyus)"에서 나왔고, 한자로는 무량수(無量壽)라고 표기한다. 그래서 무량수불로도 불리고, 아미타불이 있는 전각이름을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2. 끝 없는 빛을 가진 이: 범어 "아미따바(amitābha)"에서 나왔고, 한자로는 무량광(無量光)이라고 표기한다. 그래서 무량광불로도 불린다.

등장

국가 영향

한국

  1. 미타신앙의 한국적 수용의 한 특성은 선(禪)과 극락정토의 회통(會通)적인 노력이다.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과 선이 둘이 아니라는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전통은 원효가 “오직 마음이 정토요, 성품은 아미타불과 같다(唯心淨土同性彌陀).”를 천명한 이래, 지눌(知訥)ㆍ보우(普愚)ㆍ혜근(惠勤)ㆍ기화(己和)ㆍ휴정(休靜)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한국 아미타 승려>
이름 원효(元曉) 지눌(知訥) 보우(普愚) 혜근(惠勤) 기화(己和) 휴정(休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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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원효는 『대혜도경종요』, 『금강반야경소』, 『화엄경소』 등을 저술한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로, 많은 저술을 남긴 학승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한 민중교화승으로도 중요하다. 종파주의적 풍조를 혁파하는 화쟁사상을 주장했다. 지눌은 고려시대 『권수정혜결사문』, 『수심결』, 『원돈성불론』 등을 저술한 승려로, 선종(禪宗)의 중흥조로서,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여 선과 교에 집착하지 않고 깨달음의 본질을 모색하였다. 보우는 고려후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서 불교계의 통합을 도모한 승려로, 1368년에는 신돈의 참언으로 속리산에 금고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고, 정치와 불교의 혁신, 선문구산 통합 등에 대해서도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혜근은 고려후기 원나라 연경의 광제선사 주지, 회암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로, 중국의 지공(指空)·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 인가를 받고 무학(無學)에게 법을 전하여,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웠다. 기화는 조선전기 『원각경소』 · 『금강경오가해설의』 · 『함허화상어록』 등을 저술한 승려로, 조선 초기의 배불정책이 극에 이르렀을 때, 불교의 정법(正法)과 그 이치를 밝힘으로써 유학의 불교 비판의 오류를 시정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휴정은 조선시대 『청허당집』, 『선교결』, 『심법요초』 등을 저술한 승려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禪是佛心 敎是佛語).”라고 주장하며 선교관을 펼쳤다.

관련 유적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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