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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일) 14:35 판

사용 지역

제주 방언인 제주어는 제주시 추자면에 위치한 추자도 지역을 제외한 제주도 본섬 일대에서 사용된다. 하지만, 제주도 본섬 내에서도 동-서, 남-북 등 지리적 방향에 따라 지역별로 세부 어휘나, 언어 체계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제주도 도마뱀.png
'도마뱀' 어휘의 동-서에 따른 차이


제주도 게.png
'게' 어휘의 남-북에 따른 차이

방언 특징

제주 방언? 제주어?

제주 방언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역적 특색이 드러난 특이한 형태의 '한국어' 라는 점에서, 본래 한국어의 방언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내륙 (제주도식 표현으로는, '육지') 한국어와는 상호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정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한국어와 함께 한국어족 에 속하는 별개의 언어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며,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이를 소수언어로 인정하여 '제주어'라고 하고 있다. 2010년 12월, 유네스코에서는 전문가를 제주에 파견, 현장 방문과 답사, 한국어를 전공하는 전문가와의 의견 교환, 각 지역 언어를 담당하는 유네스코 언어 전문가와의 토론 과정 등을 거쳐 제주어를 언어의 소멸 위기 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1]

제주어의 주된 사용 지역인 제주도 본섬을 포함한 한국에서는 '제주도 사투리', '제주 방언', '제주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 시점부터 해당 언어는 '제주어' 로 표현하기로 한다.

과거 기록

현재 많은 사람들의 제주어에 대한 인식이 그러한 것처럼, 오랜 옛날에도 제주어는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받아들여져 왔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제주도가 탐라국이라는 다른 국가로 존재했으므로, 기록이 많지 않으나 15세기의 문헌에서부터는 다시 제주어의 기록이 발견된다.

 村民俚語艱澁, 先高後低. ... 長兀嶽, 在漢拏山腰, 距州三十六里. ... 藪諺作花.
 마을 백성들의 사투리는 난해하다. 앞말은 소리가 높고 뒷말은 소리가 낮다. (...)
 장올악(長兀嶽: 물장오리오름)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데 주에서 36리이다. (...)
 숲은 방언으로 곶[花]이라 한다.


이는 《동국여지승람(1486)》 38권 전라도 제주목에서 발견되는 기록이다. 당시 사람들도 제주어를 '난해하다'고 받아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내의 사천과 고성, 진주 지방에 ‘제주의 두독야지’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처음엔 2~3척의 배를 가지고 오더니, 이젠 32척이나 되었다. 강 기슭에 의지해 집을 지었는데, 의복은 왜인과 같으나 언어는 왜말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니다. 항상 고기를 낚고 미역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성종 8년 (1477)의 조선왕조실록 속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제주 사람이 쓰는 말은 일본 사람의 말도, 중국 사람의 말도 아니라고 언급하며, 알아듣기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土人語音, 細高如針刺. 且多不可曉, 居之旣久, 自能通之. 古云兒童解蠻語者此也. ... 有山果末應, 實大如木瓜, 皮丹黑.
 토착민의 말소리는 가늘고 높아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과 같다.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많으나, 그곳에 오래 살다 보면 저절로 능통해진다.
 옛말에 어린아이가 야만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라 했거늘 바로 그것이로다. (...)
 산의 과실로는 말응(末應: 멀꿀)이 있는데, 열매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껍질은 검붉다.


이는 중종 12년 (1520년) 제주에 유배 와 기록을 남긴 김정의 《제주풍토록(1521)》 속 기록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제주어가 당시 내륙의 언어와 다른 형태를 띄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言語往往雜以文字. 若男子之尊稱曰官官, 土字蒜字皆不用方言. 若不好字用漢音. 此類甚多. ... 余之所聞不至於地誌, 所謂俚語者但高細, 不可曉則然矣. 以藪爲花, 岳爲吾老音等語, 猶前所云.
 말을 할 때 이따금 한자어를 섞어 쓰는데, 남자의 존칭을 관관(官官)이라 하거나 흙 토(土)자와 마늘 산(蒜)자는 모두 방언을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좋아하지 않는 글자는 한음(漢音)으로 쓰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는 아주 많다. (...)
 내가 들은 것은 《지지(地誌)》에 들어있지 않은데, 사투리라 함은 다만 말소리가 높고 가늘기에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럴 것이다.
 숲을 곶[花]이라 하고, 산을 오로음(吾老音)이라 하는 등의 말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임제의 《남명소승(1578)》 속 기록이다.


 人語如鴂舌啁啾, 不可辨也. ... 地誌: 俚語以藪爲花, 以岳爲吾老音, 以爪爲蹄, 以口爲勒, 勒爲祿大, 爲加達云.
 사람들의 말은 뱁새가 짹짹거리는 것 같아 알아들을 수가 없다. (...)
 《지지(地誌)》에 따르면 사투리로 숲을 곶[花]이라 하고, 산을 오로음(吾老音)이라 하며, 손톱을 굽[蹄]이라 하며, 입을 굴에[勒]라 하며, 굴레는 녹대(祿大) 또는 가달(加達)이라 한다.


김상헌이 선조 34년 (1601) 안무어사로 제주에 왔을 때 지은 여행일기인 《남사록(1601)》 1권 속 기록이다. 이 뿐만 아니라, 《남사록》 속에는 이러한 기록도 있다.


 謫人申長齡, 乃譯官也. 嘗曰: "比島語音, 酷以中華, 如驅牛馬之聲, 尤不可分辯云云. 盖風氣與華不隔而然耶? 曾爲元朝所據置官於此, 故與華相雜而然耶?"
 귀양살이를 한 신장령(申長齡)은 본래 역관이었다.
 일찍이 말하기를 "이 섬의 말이 중국말과 아주 흡사하고 소나 말을 몰 때의 소리는 더욱 분간하지 못하겠다.
 대개 기후가 중국과 차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일찍이 원나라가 점거하여 관리를 이곳에 두었기에 중국말과 서로 섞여서 그런 것인가?"라고 하였다.


앞선 《남명소승》 속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제주어가 한자어를 많이 썼다는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함을 알 수 있다. 해당 기록 속 신장령의 말대로 원나라 탐라총관부 시절의 잔재일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는 단순히 제주어가 육지 사람들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더 크다.

문법 요소

세대별 차이

어휘

문장

사례

참고 문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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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네스코가 발행하는 『소멸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에서는 언어의 소멸 위기 단계를 총 6가지로 구분하여 더 자세히 관리, 조사하고 있는데, 그 구분은 이와 같다:
    단계 명칭 분류 기준
    0단계 안전함 모든 세대가 해당 언어를 사용하여 언어의 세대간 전달이 끊기지 않는 경우 (*『소멸위기에 처한 언어 지도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에 표기되지 않음)
    1단계 취약함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해당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가정과 같은 특정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경우
    2단계 소멸위기 1단계 (소멸위기에 처함) 어린이들이 더 이상 가정에서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는 경우
    3단계 소멸위기 2단계 (심각한 소멸위기에 처함) 노령인구가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로, 부모 세대는 해당 언어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아이들이나 서로에게 해당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는 경우
    4단계 소멸위기 3단계 (소멸 고비에 처함) 노령인구만이 해당 언어를 부분적이고 드물게 사용하는 경우
    5단계 소멸됨 1950년 이후 사용자가 남아있지 않음 (사어, 死語)